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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글 쓰는 여성: 10. 이런 것까지 고백하다니

영화 '비올렛(바이올렛)'(2013)의 자기고백적 작가 비올렛 르뒥

1. 이상한 제목


한국에서는 조금 낯 뜨거운 ‘바이올렛: 그녀의 뜨거운 삶’(번역자는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비올렛’은, 콜레트와 아니 에르노의 다리를 잇는 프랑스의 자기고백적 작가 비올렛 르뒥의 전기영화이다.

    

2. 작가가 되기까지     


양성애자 비올렛 르뒥은 부유한 부친과 하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십 대때 학교에서 동성애적 관계를 가졌다가 퇴학당했다 (첫 소설 ‘황폐’의 원고에 실린 이 동성애 경험은 출판사에 의해 검열, 삭제당했지만 나중에 소설 ‘테레즈와 이사벨르’에 실리게 된다). 르뒥은 바깔로레아 시험에 떨어진 후 플롱 출판사의 직원으로 일했으며 자끄 메르시에라는 남자와 결혼하기도 했으나 결혼은 불행하게 끝났다.


르뒥의 일생에서 전환점이 된 시점은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 유년 시절의 어두운 체험을 그린 자전적 원고인 ‘질식’를 보낸 순간이었다. 보부아르는 곧바로 르뒥의 독특한 문학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질식’을 출간하도록 도와준다. 이 문학적 멘토링을 계기로 르뒥은 십여 권의 책들을 출간하며 작가로 성장한다.


3. 르뒥과 보부아르     


‘비올렛’의 또 다른 재미는 르뒥과 보부아르의 비교, 즉 둘의 우정 아닌 우정의 관계를 보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르뒥과 보부아르는 사뭇 대조적이다. 보부아르는 자존심 세고 학계와 문단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이지만 르뒥은 사생아로 태어나 자존감이 낮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하다. 보부아르는 대표작 ‘제2의 성’에서도 보이듯이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지만 르뒥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고백적이고 솔직한 어조로 불행한 가정사, 치부, 성적인 경험, 그리고 사랑의 실패에 대해서 글을 쓴다.


단순히 글쓰기와 관련된 도움을 주고 받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르뒥이 애정의 대상으로서 보부아르에게 집착하면서부터이다. 르뒥은 낮은 자존감과 애정결핍을 해소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남자 또는 여자와의 사랑에 집착하는데 이번에는 보부아르와 일방적인 사랑에 빠진 것이다. 보부아르는 냉철하게도 이런 르뒥에게 거리를 두며 때로는 당근, 때로는 채찍을 사용해서 그녀가 계속 글을 쓰도록 도울 뿐이다 (르뒥으로 하여금 내밀한 체험과 느낌을 극한까지 파고 들어가도록 유도한 보부아르의 이러한 행동이 과연 현명한 것이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에... 사회의 관습과 도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첫 작품 ‘질식’으로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준 르뒥은 점점 독자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보부아르가 서문을 쓴 소설 ‘황폐’는 프랑스에서만 17만 부가 팔리는 성공을 거둔다.     


4. 어둠에서 빛으로      


‘비올렛’은 르뒥이 어두운 과거를 벗어나 작가로서 내면을 탐험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프랑스 남부 여행을 통해 표현한다. 동성애 작가 모리스 삭스와의 어둡고 칙칙한 동거생활에서 시작한 영화는 색채가 점점 밝아지면서 결말에서는 르뒥이 풍광이 찬란한 프랑스 남동부 포꽁 지역에 머물며 글을 쓰는 장면을 보여준다.    


물론 사생아라는 불행한 뿌리와 유년 시절의 학대, 동성애 성향을 비롯한 자신의 수치를 모조리 드러낸 르뒥의 정신적 상태가 온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르뒥은 ‘황폐’ 출간 이후 병원에 입원해 편집증 치료를 받았으며 요양원에도 입원했다.


동성애와 양성애라는 다소 불편한 주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비올렛’은 개인적으로 르뒥과 보부아르 두 여성 모두에게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지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보부아르나 자신의 체험에서 글감을 가져오는 르뒥이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작가적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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