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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숙의 브런치입니다
Aug 19. 2024
영화 속 글 쓰는 여성: 11. 치유와 회복의 글쓰기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과 김지영의 치유적 글쓰기
1.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등장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 후 오래 간 만에 문학 분야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같은 영상매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책이, 그것도 자기계발서가 아닌 소설이 백만부가 넘게 팔렸으니 말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6년 발표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07년 김훈의 ‘칼의 노래’,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9년 만에 누적판매량이 백만 부가 넘어간 소설이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대박 행진에는 가정과 사회에서 실제로 겪는 이야기에 목말라 하던 20~40대 여성들의 독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다 보면 (우리 부모님 대에까지만 해도 널리 퍼져있었던) 남아선호 사상이라던가 학교와 직장에서의 남녀차별, 공공연한 성희롱, 결혼과 육아로 경력 단절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2.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제기되었던 성차별적 사회에 대한 비판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로 이어진다.
여주인공 지영은 아이를 낳은 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데 언제부터인가 혼잣말인 듯 헛소리를 하는 버릇이 생긴다. 남편 정대현은 걱정이 되어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지만 병식(주: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이 없는 아내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국문과를 나온 지영은 결혼 전 홍보회사에 다녔다. 그녀는 똑똑하고 일도 잘했지만 여성이었기에 원하는 기획팀으로 스카우트되지 못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은 지영은 직장을 그만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일에 대한 욕심이 있기에 주부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지영은 다시 일을 하고자 하나 어려움에 맞부딪힌다. 남편 대현이 지영을 위해서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나 시댁에서 반대하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분명히 아이를 사랑하지만 육아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영의 자아실현 욕구에 대해서 그깟 돈 한두 푼 벌자고 아이를 버려두고 일하러 가냐고 비난하는 시댁의 입장도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여성이 가정과 직장을 병행할 수 없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후진적인 사회구조가 문제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일부 직종에서의 현상이고 그로 인해 겪는 불리함이 많은 것으로 안다).
3. 치유로서의 글쓰기
결국 일로 복귀할 수 없게 된 지영은 정신과를 찾아가는데 영화 속 정신과 의사는 이해심 많은 태도로 지영이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도록 배려한다. 또한 지영이 직장사회에서 낙오되고 육아 우울증(또는 해리 증상)을 겪게 된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 준다. 더 나아가 의사는 지영이 이전에 화가 나거나 답답할 때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어봄으로써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소설과 차별 짓는 가장 큰 도약이 바로 이 지점, 즉 지영이 글쓰기를 통해서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의 질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영은 아파트 우편함에서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를 찾아서 자신의 글 ‘여자아이는 자라서’가 실린 것을 확인하고 기뻐한다. 집으로 들어간 김지영은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눌러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글 쓰는 지영의 뒷모습을 미디엄 숏으로 잡으며 그 쇼트 위로 지영의 보이스오버로 “그녀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습니다”라는 나레이션이 덧입혀진다. 이후에는 페이드아웃된 검은 화면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제2장 서두를 여는 문장,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습니다”를 읽는 목소리가 따라 나온다.
4. 상호텍스트성: 대화하는 텍스트들
이제 우리는 알게 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만들어졌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지영이 쓴 소설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즉 소설과 영화, 영화와 소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며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을 이루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서로 대화하며 대한민국 여성이 성차별적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이러한 현실에 대항하고 여성의 정신적, 사회적 회복을 가능케 할 한가지 방편으로써 글쓰기를 제시함으로써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한 발짝 전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