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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Nov 10. 2018

술푼 이야기


맛도 없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글쓰는 작가라면, 하루에 커피를 열댓잔 정도는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고 말도 하고 글도 쓰고, 시원한 캔맥주 한잔과 함께 원고를 마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허세는 없다. 그냥 못마시니까 마셔보고 싶었다.


동네 편의점에서 시원한 캔맥주 사서 한입 마시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다. 이걸 왜 먹어.
원두향이 좋은 카페에서 더치 커피를 시키면 시럽을 허벌나게 넣다가 잔이 넘친다. 단 것은 음료요 쓴 것은 사약이다. 담배를 피우면 멀미가 나고 몸에 배는 냄새가 싫다. 담배값이 이렇게 오를줄 알았으면 피우지나 말 것을.


하루에도 수십잔의 커피보다는 한두잔이 딱 좋은 것 같다. 매일매일 음주가무보다는 어쩌다 한번 진지하게 취해보는게 나은 것 같고. 잠들기 전, 창밖을 바라보며 피우는 담배 한 개피가 적당하다. 너무 많은 것은 또한 너무 많이 혼탁해진다.

텅 비었건만 자신이 꽉 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이 비어있는지 채워져 있는지도 모른채 허둥거린다. 손바닥만한 재주로 세상을 가리려한다.


예술은 '장'이다. 쟁이들이 예술을 한다. 밥도 안나오고 떡도 안나와도 쟁이들은 예술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서 죽는다. 그득하게 쌓여있는 쟁이 기질이 그를 가만히 놓아두질 않는다. 예술하는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죽는 것이다. 죽어도 노래를 하고 죽어도 그림을 그리고 죽을때까지 헛소리를 써야하는 그게 올바른 쟁이들의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예술계는 가짜들의 뜻대로 간다. 그들이 만든 '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예술을 팔아 <박물관>도 만들고 <베스트셀러>도 만들고 <공연>도 한다. 스스로 쟁이가 못 된 것을 잘 아는 가짜들은 그렇게 자신의 텅 빈 공간에 무엇이든 채워넣고싶어 안달을 한다. 그 가짜들에게 피와 기름을 짜내주는 쟁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통한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살려나가고 싶어하는 그 진심이 너무도 짠하다. 죽어서도 광대로 남을 진짜 쟁이들의 현실이 너무 절절해서 아프다.


눈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을 끼지 않으면 작업을 못하는데, 예민한 나의 대갈님께서는 한시간이상 안경끼는 것을 대규모의 두통으로 거부를 표시한다. 원고는 써야하는데 눈알이 받쳐주지 않는 것, 이 또한 가난한 작가가 극복해야 할 딜레마다.
가을만큼 서글픈 계절은 없다. 밥이나 잘 먹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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