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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Jul 01. 2024

내 인생의 영화 19

니가 가면 나도 간다 <열혈남아>

지난 8, 90년대 홍콩영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아시아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주요 스타들과 감독들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홍콩영화는 제작편수나 영향력에 있어서 할리우드에 이어 세계 2위를 마크하며 한시대를 풍미했다. 80년대 말 국내에서도 홍콩스타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주윤발은 한국 티비광고에 최초로 등장한 외국스타로 기록되었고, 그가 선전한 밀키스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서 장국영, 유덕화가 투유 초콜렛 광고에 등장했고, 왕조현은 크리미라는 음료를 들고 등장했다. 


나에게는 '청춘',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두편의 중국영화가 있는데, 바로 <열혈남아>와 <천장지구>다.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느와르 계열에 속하면서도 청춘의 뜨거움과 강렬함, 비장함이 잘 살아있는 영화다. 

세계적 거장이 된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이 <열혈남아>이고, 흥미롭게도 두 편의 영화 속 남주는 바로 유덕화다.

유덕화는 당시 막 뜨는 라이징 스타, 조각같은 외모와 날카로움으로 반항하는 청춘의 표상, 그 자체였다.

두 영화 모두 청춘의 뜨거운 사랑과 의리, 비장한 최후가 버무려진 전형적인 80년대 홍콩영화였고,

젊은 유덕화는 그 뜨거움과 비장함을 멋드러지게 연기하며 한 획을 그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터트리고 보는, 강렬하면서도 우수에 찬, 대체할수 없는 아시아 최고의 터프가이,

하여 지난번에 말한 것 처럼 할리우드 톰크루즈, 아시아 유덕화, 라는 공식을 세운 것이다.

실제로 두 스타는 동갑에다, 데뷔 연도도 비슷하고, 현재까지 톱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열혈남아>는 왕가위의 여러 영화중 가장 직선적이고 또 뜨거운 영화다. 그래서 더 울림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기도 하다.  주인공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만자량의 연기 앙상블도 훌륭했다. 


"말해, 니가 가면 나도 간다. 만약에 니가 죽으면 내가 복수해줘야 하니까"


유덕화는 장학우를 말리며 외친다.  이런 앞뒤없는 의리, 그것이 그들이 사는 방식이다. 

자, 불같은 의리와 함께 이어지는 뜨거운 사랑, 

야생마 같은 유덕화를 사랑하며 가슴 졸이면서도 끝까지 그의 곁에 있으려는 여인, 그녀는 바로 장만옥이다.

20대의 유덕화와 장만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결국 <열혈남아>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청춘들의 세상에 대한 반항과 몸부림을 담아낸 영화다.

지금봐도 상당한 감정이입이 되는데,

이 영화가 본토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을 투영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홍콩 뒷골목을 누비는 건달패 유덕화와 장학우, 그들에게 착실한 목표란 없고 그저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간다.

돈도, 빽도 없는 청춘들, 유덕화는 그러나 고향 후배이자 부하인 장학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유덕화는 어여쁜 장만옥과 오순도순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덕화는 우는 장만옥을 두고 기어이 떠난다.

그게 유덕화의 신념이요 길이니까.


<열혈남아>는 왕가위의 눈부신 데뷔작이지만, 정작 개봉 당시에는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발견 되었고, 이제는 홍콩 느와르의 걸작으로 남았다.

<영웅본색>의 성공 이후 무분별하게 쏟아진 홍콩 느와르들이 대개 영웅주의적 형상을 그리는데 주력한데 반해, <열혈남아>는 비열하고 냉정한 게임의 법칙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신선한 영상과 탄탄한 스토리, 주인공들의 빼어난 연기가 삼박자를 이루며 신예 왕가위를 각인시킨 영화다. 


그리하여 영화를 본 당신이라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고 배길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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