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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Dec 29. 2023

맥주, 연말을 준비하는 자세

진득하게 까만 스타우트 맥주 만들기

결혼기념일 날, 우리는 자축을 위한 셀프 선물로 맥주 만드는 법을 배우러 다녀왔다. 런던 남부의 Brixton에 위치한 'London Beer Lab'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 맥주가 완성될 즈음이면 크리스마스 때니까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스타우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레시피는 브루어 분이 잡아주셨는데 8가지 종류의 보리와 오트를 섞었다.


색이 까만 스타우트를 만들 때 왠지 까만 보리를 주로 사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도수를 올리기 위해 맥아당을 가장 많이 뽑아낼 수 있는 스(spelt wheat)이 주재료였으며, 까맣게 볶은 보리는 20%도 채 되지 않았다. 이걸 너무 많이 쓰면 맥주에서 쓴 맛이 많이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메인 재료인 곡물들을 계량했다.

그다음은 계량한 곡물에 자연적으로 들어있는 당분을 천천히 끓여가며 최대한 빼줘야 한다. 밑에 눌어붙지 않도록 휘휘 저어준다.  과정을 매싱 (mashing)이라고 한다. 이는 마치 뜨거운 물에 차를 우리는 것과 비슷하다. 목표 온도에 다다르고 몰트와 오트를 차례대로 넣고 정해진 시간만큼 우려낸다.

한번 끓였다고 해서 당분들이 다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에 찌꺼기에 따듯한 물을 흠뻑 적시듯이 씻어내 주면서 당분을 더 뽑아낸다. 이 과정을 스파징 (sparging)이라고 한다. 마치 핸드브루 커피를 만드는 것처럼 한 번 끓여낸 매싱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주어 마지막 당분까지 뽑아낸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다 맥주가 될 소중한 원료다. 

홉은 팰렛 형태로 된 사료 모양처럼 가공된 제품을 쓴다. 은 덩굴식물의 꽃이다.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하는 건 유통이 어려워서 직접 홉 재배를 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한다. 발효 관련 책(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샌더 엘릭스 카츠) 한 권을 읽다 알게 된 짧은 지식인데, 주 생산에 대량생산과 규제의 이유로 홉만 사용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마을마다 각기 다른 식물을 넣어 특별한 맥주를 만들었다. 4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식물을 활용한 맥주 레시피가 자취를 감추고 획일화되었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이제 이것저것 넣어서 맛을 내 줄 차례다. 향과 맛을 최대한 뽑아낸 농축액을 넣어도 되고 향신료를 넣어줘도 된다. 하지만 많이  넣으면 너무 강해져서 맥주 자체의 풍미를 가리기 쉬워서 1방울씩 맛을 봐가며 소량으로 넣어야 한다. 우리는 오렌지 껍질 말린 것만 5g 넣어주었다. 겨울에 마시는 뱅쇼나 뮬드와인 같은 느낌을 내주기 위해서다.


이번에 만들 스타우트는 8가지 곡물의 조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홉은 쓴 맛을 위해 한 종류만 사용하였다. 홉을 첨가한 뒤에 오래 끓이면 특유의 향은 날아가고 쌉싸래한 맛만 남는다. 만약 IPA처럼 향긋하고 트로피컬 한 풍미를 내려면 거의 막판에 넣어야 한다. 우리 맥주는 임페리얼 스타우트 스타일로 8도 정도 고도수에 살짝 달큼함이 감도는 겨울 맥주를 의도했기 때문에 쓴 맛만 남으면 돼서 홉을 넣고 오래 끓여도 무방하다.


왼쪽 이미지는 비중계를 사용해 액체의 당도를 재는 모습이다. 초기비중을 알아야 나중에 변화된 최종비중 비교해서 도수가 얼마나 되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초기비중이 원하는 도수만큼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당분을 추가로 넣어주기로 했다. 이를 '보당'이라고 한다. 보통 보당은 일반 설탕으로 많이 하는데, 이번에는 설탕과 몰트 익스트랙트(malt extract)를 함께 넣어 보당하기로 했다. 계량하고 넣어주고 잘 섞어준다.


비중까지 확인하고 나면 맥즙을 충분히 식혀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중요할 수 있는데 만약 여러 홉을 사용한 IPA를 만들었다면 홉의 과한 추출을 억제하기 위해 아주 찬물로 빠르게 식혀주어야 한다. 이번 스타우트는 홉이 민감하지 않아 비교적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


액체가 충분히 식으면 이스트를 넣어 섞어준다. 상업용 이스트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이스트를 선택해서 넣어주냐에 따라 풍미와 맛, 도수가 달라진다.

이스트까지 넣어줬다면 이제 발효조에 담아 에어락을 설치하고 숙성시켜 줄 차례다. 맥즙을 옮겨 담기 전에 발효조 살균은 필수. 외부 미생물로부터 오염을 막는 것이 관건이다. 에어락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주고 외부에서 이물이나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간단하지만 발효를 한다면 꼭 갖춰야 할 필수장비다.

2주가 지나고 맥주를 병입 하러 다시 런던비어랩에 방문했다. 유리병 내부를 살균하고 수동 보틀링 장비로 병뚜껑을 하나하나 닫아주었다. 시험 삼아 조금 비커에 담아 마셔보니 예상보다 더 맛이 잘 들어 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아직 유리병 안에는 이스트가 살아있고 냉장고에 보관하면 조금씩 천천히 남아있는 당이 후발효가 되어 알코올로 변할 것이다. 실제로 병입 후 1달 정도 지나 호스텔 친구들과 함께 먹어보니 과장 좀 보태서 기네스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제로 기네스와 비교 테이스팅을 해보았는데 우리 맥주를 마시며 엄지를 치켜세워준 호스텔 친구들이 고마웠다.


야금야금 한 병씩 꺼내먹으면서 변하는 맛을 느껴보는 것도 자가양조의 묘미가 아닐까. 가오는 새해에 1월, 2월, 3월, 4월, 5월 -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달마다 테이스팅 해보면서 맛의 차이를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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