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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Dec 22. 2023

청, 어떤 과일이든 재료가 될 수 있어

라즈베리청, 포도청 만드는 법

지난번 칵테일 원데이 클래스에 갔다가 우리나라 발효 조미료인 '청'을 활용하고 있는 바텐더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도 여기 영국에서 청을 만들어보자고!


일링브로드웨이역 앞에는 매일 아침부터 오후 2-3시경까지 저렴하게 농산물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있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데 제철 과일과 야채를 팔고 있다. 워낙 저렴해서 인기가 많아 2시 30분에 어학원 수업 끝나고 가면 이미 다 팔고 가버리기 부지기수다. 어느 날은 라즈베리 2팩이 남아있었다. 운 좋게도 1팩에 2 파운드 하는 걸 마감 떨이로 2팩에 2파운드에 구매할 수 있었다. 라즈베리는 잘 물러서 둘이서 하루이틀 안에 이걸 다 먹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청을 만들어 보존할 생각이기 때문에 문제없다. 과육에서 살짝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부분만 떼어버리고 중량을 재니 약 580g이 나왔다. 과일의 중량과 동일하게 혹은 아무리 적어도 80%는 넣어야 한다고 해서 500g 정도 흰 설탕을 넣고 즙 짜듯 버무려주었다.

씻어서 계량해 설탕 넣고 섞어줬을 뿐인데, 라즈베리청이 이미 완성된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병조림 제품 먹고 남은 빈병들 모아뒀던 걸 뜨거운 물에 증기로 독해 청을 보관하는 데 재사용했다. 바로 냉장고에 넣지 않고 상온에 둔 뒤 매일 맛을 보면서 적당히 신맛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적당한 산도를 찾아야 한다. 완성된 후에는 작은 통에 옮겨 담아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라즈베리 청은 플레인 요구르트에 섞어 먹어도 괜찮고 팬케이크에 얹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당연하듯이 각종 요리할 때 단맛 내는 용도로 매실청을 자주 쓰고, 소화가 안 될 때면 따듯한 물에 타서 차로 마시곤 했었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표 매실청을 얻어먹다가, 이제는 매실 나올 철이 되면 매실청을 직접 담근다. 이에 반해 영국에서는 과일로 잼이나 마말레이드 처트니 등 빵에 발라먹는 스프레드 형태로는 만들지만, 시럽 형태의 발효 청을 만들진 않는다. 과일을 어떻게 보존해 섭취하는지 음식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추측 건데, 유럽은 빵이 주식이기 때문에 발림성이 있는 제형을 선호했을 테고, 반면 우리나라는 반찬이나 음식의 조미료로 쓰는 경우가 많아 묽은 청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한 번은 호스텔 정원에 주렁주렁 달린 포도 몇 송이로 포도청도 만들어 보았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포도알만 깨끗하게 씻어서 계량한 뒤 동량의 설탕과 잘 섞어서 병에 담아주면 끝!

일주일 정도 지나 껍질과 씨앗을 채로 걸러내 주니 2/3 정도 분량의 청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탄산수에 얼음 넣고 타마시면 와인 대신 포도 탄산음료로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앞으로도 제철 과일을 저렴하게 구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고 청을 만들어 사시사철 그 과일을 맛볼 수 있도록 보관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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