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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Jan 05. 2024

와인, 내추럴하게 발효해 보기

자연 효모로 핸드메이드 와인 만들기

12월 초, 호스텔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포도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일전에 한 번 포도청을 만들기도 했던 포도들이다. 겨울비가 잔뜩 내리면 무르고 떨어져 먹을 수 없게 되는 게 너무나도 아까웠다. 호스트 분의 허락을 받고 4-5송이 정도 따서 줄기와 잎, 불순물을 떼어내고 물에 씻어주었다. 살충제 없이 그저 빗물만 마시고 자란 포도라 벌레가 꽤나 있어 세척하는 데만 꽤 오래 걸렸다. 선별 작업 끝에 스테인리스 보울 한 바가지에 포도송이가 가득 찼다.

다음 단계로 손으로 꾹꾹 쥐어짜 포도즙을 내주었다. 상업 와이너리 양조 과정에서는 포도 알맹이를 터지지 않게 그대로 발효조에 넣고 발효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껍질과 씨앗, 과육이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적은 분량의 홈브루이기 때문에 바로 즙을 내주다.

미끌미끌한 질감의 포도알을 짓이기는 과정 자체가 꽤나 재미있다. 이 과정에서 손과 공기 중에 있던 이스트 효모균들도 혼합되어 발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맛있는 술이 되길 기원하며 열심히 저어준다. 이렇게 상온에 두고 면포 같은 거로 날파리가 들어가지 않게 덮어준 다음 매일 한두 번씩 저어주면서 상태를 본다.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찌꺼기들을 밀어 올려 상단에 찌꺼기막 같은 게 형성된다. 발효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그 막을 부서 줘야 한다. 찌꺼기들이 가라앉기 시작한다면 이제 병입 할 타이밍이다. 우리는 일주일 정도 걸렸다.

채반으로 껍질과 씨앗을 걸러내고 나니 약 1.5리터 정도 와인이 나왔다. 여전히 발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뚜껑은 꽉 닫으면 안 되고,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느슨하게 결합해 둔다.

하룻밤 지나서 보니 병목 부분에 자국이 생겼다. 격렬하게 바글바글 끓어올랐다가 잠잠해졌다는 표시다. 무수한 버블들이 올라오면서 뽀글뽀글 소리 내는 걸 듣고 있자면 신기하기만 하다. 이게 정말 되는구나. 항상 사 먹기만 했던 와인, 내가 직접 만들 수 있구나! 어디든 존재하는 이스트와 그 먹이가 되는 당분만 있다면 술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맛과 퀄리티를 보장할 순 없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뽀글거리는 반응이 거의 없어진 후에는 바닥에 쌓인 리스를 걸러주고 플라스틱 병에 담아줄 예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병뚜껑을 꽉 닫고 탄산화를 한다. 플라스틱 병은 혹여 과탄산화로 폭발하지 않도록 내부 압력을 체크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병을 손가락으로 눌러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면 내부가 이산화탄소로 꽉 차있는 거기 때문에 살짝 뚜껑을 열어 빼줘야 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탄산으로 톡 쏘는 핸드메이드 내추럴 와인을 맛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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