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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티브이3.jpg


툭!

티브이가 꺼졌다. 그 앞에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간단한 체조를 하던 중이었다. 어떻게 해도 다시 켜지지 않았다. 산 지 10년이 훨씬 넘은 티브이었다.


생각해 보니 조짐이 있었다. 오후에 영화를 볼 때 지루해서 1.5배속으로 돌렸더니 자꾸 지지직 소리가 났다. 빨리 돌린다고 그런 소리가 난 건 처음이었다. 화면은 그대로여서 고개만 갸웃하고 말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주, 코스트코에 갔을 때 사라졌던 남편을 가전코너의 티브이 앞에서 발견했다.

“여기서 뭐해?”

내가 물었다.

“……그냥.”

나를 돌아본 남편이 심상하게 대답했다.

이런 걸 촉이라고 해야 할까. 무의식 중에 징조를 느끼기는 하지만 해석하지 못하니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지나고 나서야 혹시 그때 그분이? 할 뿐.


고장 난 다음 날, 시치미를 떼고 티브이를 켜봤다.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티브이는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 꼬박 이틀을 조용히 보낸 후 새로 샀고, 아직 배달 전이다. 소파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컴컴한 화면을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당연히 묵묵부답이다. 까만 화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이나 밤에 또는 밥을 먹을 때 대부분 가족과 함께 했고, 혼자 있을 때는 든든한 인기척이 되어 주었다. 넷플릭스 같은 건 연결할 줄 모르는 녀석이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티브이로 영화도 많이 봤다.

‘그동안 수고했어. 고마워.’

옆으로 지나가며 살짝 쓰다듬었다.


불현듯 5~6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타던 차를 팔기로 했다고 했더니 친구가 값을 후하게 쳐주는 중고차 딜러를 소개해 주었다. 전화를 받은 딜러는 마침 근처에 있다며 30분도 안 돼 집 앞으로 왔다. 두 사람이 앞뒤로 차를 둘러보며 여기저기 점검을 한 다음, 그 자리에서 돈을 이체시켰다. 나는 차에 있던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 그들이 준 비닐봉지에 담았다. 남자는 내게서 키를 넘겨받자마자 차를 몰고 떠났다.

울컥, 눈물이 났다. 변변한 인사도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내 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차는 순식간에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언제부턴가 나와 함께 낡아가는 가구나 가전제품도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 고마워. 씩씩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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