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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by 김서연


아버지 생신이 월요일이어서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미리 모였다.


“아버지, 오미크론이 대유행이라는데 좀 잠잠해지면 갈까요?”

동생이 물었더니.

“그냥 오너라.”

하셨단다.


그런 일로 작년엔 많이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 포함해서 다섯 명만 단출하게 모였다. 밖에서 점심을 먹었고, 차는 아버지 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녹차 케이크와 유자차를 마셨다. 안마의자에 앉은 남편을 빼고 믹스커피도 한 잔씩 더 마셨다. 아버지가 티브이를 틀었다. 트로트가 나왔다. 소리가 컸다.

나와 동생은 싱크대와 냉장고, 창고를 열어보고 생필품이 떨어진 게 없는지 확인하고 주문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동생이 식탁 앞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 좋아서 집중하면 항상 저런 표정이야.”

동생이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코 평수를 넓히고 인중을 길게 늘인 다음 입을 조금 내민 모습으로 티브이 가까이에 놓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식사할 때 옆에 앉아서 아버지를 위해 음식을 덜었고 맛있는 반찬을 가까이 놓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트로트 재밌어요?”

내가 물었다.

“어어? ……어, 잘해.”

젊었을 때는 가요도 안 듣던 아버지가 말했다. 어디 가서 노래 부를 일이 있으면 <선구자> 같은 걸 불러서 분위기 다 깨 놓았다고 했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이제들 가라.”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아버지가 말했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동생과 의논하던 중이었다. 아버지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그럼 쉬세요. 나오지 마시고.”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다 보니 어두운 베란다에서 잘 가라고 팔을 흔드는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차창을 열고 뒤늦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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