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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17. 2024

두 시간 때는 미는 마음

천 개의 행복 모으기


1.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핸드폰을 쓰면 안되는 환경에 나를 두면 된다.


2. 핸드폰을 쓰지 않는 상황에도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는 핸드폰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답답해하며 시간과 정신의 방을 견디는 것이다. 둘째는 핸드폰을 쓰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잊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일이다.


3.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입장 초반은 첫째 상황이었다. 탕에 들어가고… 이어지는 시간과 정신의 방. 뭔가 계속 다른 생각이 든다. 아니야 현재에 집중해. 숨을 고르자. 명상 하자. 후우. 하아. 후우. 하… 이따 무슨 탕 가지. 때 무슨 순서로 밀지. 쏟아지는 온갖 생각들. 이건 핸드폰을 안하는게 아니다. 그냥 손에서 억지로 폰을 뺏어서 사물함에 잠가둔 상황이다.


4. 하지만 때를 밀며 본격적으로 몰입의 순간으로 들어갔다. 순서는 왼쪽 하체부터… 오른쪽 하체…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 부위별로… 하체만 끝나고 시계를 봤더니 40분이 흘러 있었다. 다리 한짝에 20분을 쓴 셈이다. 최근 들어 가장 몰입한 순간이었다. (한달 내 이정도로 집중한 적 없었음) 계속 손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 손을 쉴새 없이 놀리면 잡념이 사라진다. 당장 집중할 분명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두 시간 때를 밀었다…


5. 뜨개하는 친구들이 아마 그런 마음일까? 나는 종종 슬라임을 산다. 손을 계속 놀리며 슬라임을 만지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든다. 촉감도 재밌고, 향기롭고, ‘바풍(바닥풍선)’도 시도해 본다. 슬라임이 비싸서 자주는 못하지만.. 대체품으로 다이소에서 ‘스킬자수 파우치’를 샀다. 초등학생 때 다 한번씩 해본 그거다. 너무 단순 반복이라 슬라임 처럼 재밌지는 않지만.. 적어도 파우치를 만드는 동안 다른 건 못하니까.


6. 자전거를 탈 때도 몰입이 된다. 우선 핸들을 잡아야 하니까 손을 못쓴다. 자전거를 타면 다른 생각을 못한다. 모든게 너무 직접적이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도. 내 시야에 광각으로 담기는 풍경들도. 지나가는 등장인물들도. 정말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빠져들 수 있다.


7. 산책은 조금 다르다. 나는 두 종류의 산책을 하는 것 같다. (1) 헤드폰 끼고 트위터나 포타 뒤지며 걷는 산책 (2) 핸드폰은 보지 않고 노래도 듣지 않고 걷는 산책. 전자는 할때는 보통 스트레스가 없을 때다. 생각할 것도 없고 마음 편할 때, 노이즈 캔슬링으로 빵빵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거다. 반면 후자는 생각이 너무 많을 때다. 스트레스가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으면 노래도 안들린다. 저절로 경건한 마음으로 집밖을 나선다.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서 나는 산책할 때 핸드폰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아 나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도 한다.


8. 하루 종일 핸드폰 볼 새도 없이 바쁘게 일하고 늦게 퇴근한 날엔 보상처럼 신나게 핸드폰을 한다. 누워서 잘때까지 계속 유튜브랑 트위터만(보통 nct만 봄) 집중력은 도둑맞지 않는게 최선이지만 때로는 그저 미친듯이 도둑맞게 냅두는게 답일 때도 있다. 그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9. 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주말이나 연휴에는 질 좋은 휴식을 취하고 싶다. 소영님 스토리에서 보고 캡쳐한 이미지가 있다. (직접 디엠으로 이미지도 보내주심) 지난 주말엔 그걸 배경화면으로 해두고 의식하며 따라했다. 독서, 자연, 혼자 있는 시간, 음악, 아무것도 안하기, 산책, 목욕, 잡념, 텔레비전.. 아마 이걸 보다가 목욕탕 갈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모든 날 퀄리티 있는 휴식을 취할 순 없다. (지난 해 나는 대부분의 주말을 죽은듯 누워 유튜브만 봤다). 다만 좋은 날에 뭘 할지 기억해두고 있으면… 종종 꺼내서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지치고 우울할 때,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나만의 체크리스트.


10. 그런 마음으로 한때 블로그에 <천개의 행복>을 기록했다. 미래의 내가 참고하라고, 일상에서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적었다. 거기엔 이런 것들이 적혀 있다 : 당일 아침에 결정한 연차, 운동 후의 차가운 소비뇽 블랑, 극장에서 내려간 영화의 재상영 소식, 언제든 갈 수 있는 수면실, 점심시간에 하는 산책, 내가 시킨 적 없는 택배, 독서 중 킥킥대며 웃게 되는 문장을 발견할 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감각, 잘보고 있다는 문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급히 메모장을 킬 때 …



(24.1.10)



소영님이 보내준, 지치지 않는 방법
시간 보내는 법
산책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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