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란 가장 잘 한 오해이고…'
1. 퇴근길에 김소연 시인이 나온 <정희진의 공부> 팟캐스트를 들었다. 너무 좋았다. 듣다가 공감가서 웃은 부분이 있다. “가끔 저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후배들이 저의 작품이든 삶이든 좋아해주며 다 이해한다 넌 정말 대단해 각고의 노력을 했구나 할때 속으로 아무리 이해받고 있어도 살짝쿵 ‘니가 뭘 알어’ 심술궂게 올라와요.“ 니가 뭘 알어. 나도 그런 심술이 너무 자주 올라온다. 물론 다들 좋은 의미로 한 말인데…
2. 인스타그램의 공지 채널 알림을 참을 수가 없다. 팔로우하면 됐지 뭘 또 공지 채널까지 만들어서 초대를 해? 내가 사전에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부분이 몹시 짱난다. 그래서 공지 채널 초대한 인플루언서는 언팔 갈긴다. (이 기능도 일정 팔로워 이상이어야 쓸 수 있는듯? 그것도 짱남)
3. 영향을 잘/많이 받는다. 작은 것에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속이 좁고 많이 짜치는 성격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잘 받으니, 내가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안다’는 거지 ‘잘 안다’는 건 아니다. 역지사지는 어렵다. 근데 어제와 오늘은 ‘견디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내가 타인을 견디는 것 말고. 타인이 나를 견디고 있다.
4. 옛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가 카톡을 보냈다. 2017년에 일하던 내 사진과 함께. 그때 나는 남초 제조업 회사의 신입/경력사원 입문 교육을 담당했다. 사회초년생이 이미 밖에서 구를만큼 구르고 들어오는 경력 사원들을 상대해야 했다. 언젠가 너무 내가 버거워보였는지, 입사 교육을 받던 경력사원이 내게 위로의 카톡을 보낸 적이 있다. (방금 입사한 사람한테 격려 받는게 맞아?) 그 사람들은 부족한 나를 많이 견뎠다. 물론 견디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겠지만.
5. 돌이켜보니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견딘 것 같다. 어설프고 못해도 기회를 주고, 시간을 주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느낀다. 그런데 견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주려면 오래 보는 사이여야 한다. 나에게 왜 기회를 줬을까? ( 정규직 / 공채 / 호봉직이어서 그런건 아닐까? )
6. 어떤 유명 언론인이 쓴 책을 읽은 적 있다. 부족한 나를 성장시킨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히 드러났다. 그의 글에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식의 겸손함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효과로서 작동하는 겸손함이었다. 업계 1위 조직의 한가운데서, ‘이렇게 부족한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선배들에 대한 감사. 그게 너무 어떤 선 안쪽의 시선이라 읽기가 힘들었다.
7. 그때 나는 도우리 작가의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를 같이 읽고 있었다. ‘랜선사수’라는 파트였다.
”나는 일머리가 없는 편이다. 임시직과 계약직을 전전하고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일터와 지속적으로 연결된 경험이 적은 영향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립에 오래 노출되어왔던 노동자여서 그렇다. 업무의 이슈들을 다른 동료나 상사와 함께 해결된 관계 자원, 업무 피드백을 수시로 주고받을 기회, 일의 전체적인 맥락과 역사를 파악할 위치, 문제에 적절한 시기에 충분히 개입해서 바꿔낼 수 있는 권한, 민감한 이슈여서 구두로만 공유되는 정보들로부터의 고립 말이다.“
결국 ‘일머리’는 일터와 지속적으로 연결된 경험에서 오는 것 아닌가? 부족한 나를 견딜 시간이 주어지는… #선배없는 #랜선사수 #입사하자마자팀장 #일잘러 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얼마나 어렵나?
8. 암튼 이런 저런 생각을 갖고 퇴근하고 밥을 먹는데 테이블 옆에 둔 한 책에 눈길이 갔다.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언젠가 샀지만 제대로 읽어보진 않은 책이다. 목차를 보는데, 아 또 참기가 힘들다. 대충 ‘우리는 존재 자체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과감히 활용해서 설득하라/ 사람들은 쉽게 ‘노’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런 내용.. 이 책을 안읽어서 좋다 안좋다 말하는건 아니다. 그냥 오늘의 나는 다 피곤했다.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 많은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 그러니까 더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기 보다, 그냥 서로를 좀 견뎌보는 건 어때…
9. 김소연 시인은 팟캐스트에서 <마음사전>의 한 문장을 낭독해줬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이다.” 오늘은 이걸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10.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 같네… 쪽팔린데 그냥 올리자. 며칠 후면 이 글도 까먹을테니까 상관없다.
(2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