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퇴근길에는 (날이 궂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를 빼고) 보통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산책로로 연결된 길을 따라 집까지 걸어간다. 처음에는 숨 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는 생활에 몸뚱이가 삐거덕거리는 것이 영 심상치 않아 살기 위해 걷기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사십 분 정도가 걸리는 시간 동안 열심히 걷고 또 걷다 보니 예전보다는 체력이 조금 더 붙은 것 같기도 하다. 회사나 집에서 보지 못했던 바깥 풍경을 찬찬히 보게 된 것은 덤이다.
평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면 눈이 부시다 못해 아려서 회사에서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집에서는 암막커튼을 쳐 둔다. 방문을 열 때면 드디어 동굴에서 나오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팎으로 태양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됐는데, 그에 따른 성향인지 바깥 상황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외부 세상의 변화에 빠릿빠릿하게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건 그다지 좋지 못한 특성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꾀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길 걷기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더욱이 그 길이 도심 하천과 실개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로라는 사실은 기가 막힌 행운이었다.
운동 삼아 걷기 시작한 지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초반에는 집까지 가기 바빠 지도앱을 켜곤 제일 빠른 길을 탐색하기에 급급했다. 한동안 그렇게 앞만 보고 돌진하듯이 걸어 다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만 하늘엔 달이 없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숙이자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보였다. 검게 가라앉은 저녁 공기를 채우는 빛무리가 밤길을 수놓았다. 갑자기 길가의 작은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였다. 맑은 호숫가에서 바라본 풍경에 비친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지듯 밤하늘과 밤길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아졌다. 밤하늘이 아래로 내려앉아 땅바닥을 덮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나로 합쳐진 어둑한 광경에 발길이 절로 멈춰져 한참을 두리번거렸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퇴근길을 걸어갈 때면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곤 한다. 봄이면 알록달록 꽃이 피고, 여름에는 여기저기 수풀이 우거진다. 가을에는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어 떨어지고 겨울에는 눈꽃송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목화솜처럼 몽실몽실하게 뭉쳐진다. 요즘엔 겨울 참새 떼가 자주 보인다. 추운 날 털을 한껏 부풀린 동글동글한 참새가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참새 무리 중간에 자그마한 새도 가끔씩 보이는데 붉은 눈 오목눈이가 아닌가 싶다.
실내에서는 보이지 않게 꼭꼭 막아둔 세상이 집에 가는 길, 느긋한 마음속에 선연하게 들어온다. 오늘 올려다본 하늘도 검고 또 검었다. 도시에서 눈부신 은하수는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건너 건너 두서너 개 보이는 별이 참예쁘게도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