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끝자락을 아쉬워하며 붙잡았던 게 무색할 만큼 3으로 바뀐 끝자리에 설레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00:00이 되자마자 2023으로 바뀌는 순간은 오히려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시계만 쳐다봤다. 이렇게 일 년이라는 시작이 또 반복되는구나 싶기도 했다.
새해 첫날 아침에 케이크를 샀다. 가족모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 같이 모여 새삼스런 인사라도 나누려면 이렇게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야 한다. 2023년의 시작을 기념하고 싶었는데, 어제의 나를 위로하고 오늘의 나를 응원해주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케이크에 초 하나를 올리고 불을 붙였다. 선물로 받은 무알콜 스파클링 와인을 잔에 따라 촛불을 끄기 전 와인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세 사람 손에 든 와인 잔이 찰랑 소리를 내며 맞부딪히고 촛불은 가벼운 입김 한 번으로 이내 사그라들었다. 케이크는 초코 생크림 속에 박힌 초콜릿이 바삭거리며 씹혀 한없이 달았다. 와인은 새콤함과 상큼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목을 넘어갔다. 차가운 햇살이 노랗게 익어 집 안을 비추는 동안 달짝지근한 맛과 향에 취해 둥둥 떠다녔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진취적이고 희망찬 느낌을 준다. 신년 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이것저것 하고픈 일들을 줄 세워 두는 것도 그런 기분을 구체화하는 방법일 터다. 나 또한 늦은 시간까지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해볼까 하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물수록 기대감이라는 게 점점 쪼그라들더니, 저 멀리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불안감이 벌떡 일어나 머리를 불쑥 들이밀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고 신나 하다가 도리어 그 많은 일의 목록이 주는 무게에 눌려버린 거였다. 어처구니가 없는 감정의 파도를 타다가 그렇게 날이 밝았다. 그런 와중에도 신년 계획에 늘어놓은 리스트가 줄어들지 않은 걸 보고선 욕심도 참 많다 싶었다.
<2023 신년 계획>
일단 글을 최대한 많이 읽고 쓰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우선, 좋은 책을 만나 필사를 하고 단상을 꾸준히 남기려 한다. 읽은 책 전부를 필사하지는 않는다. 여러 책-이라 해봤자 실제 권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을 쭉 보다가 내용이든, 문장이든 마음에 콕하고 박히는 책을 골라 두세 번 정독을 하며 좋아하는 문장과 표현을 필사하고 단상까지 쓴다. 확실히 눈으로 읽기만 하는 것보단 직접 문장을 쓰며 보는 게 글이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는 필사까지 할 정도의 책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공책을 펴고 만년필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그와 함께 올해는 소설과 시를 쓰고 싶다. 작년부터 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A4 2~3장 정도의 초단편소설(엽편소설)을 몇 편 올려보고, 아카데미 수업을 수강하며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앞으로 단편소설을 조금 더 써보고 싶은데, 70~80매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쓰는 게 영 쉽지 않아 고민이다. 글 쓰는 속도가 워낙 느리다 보니, 올 한 해 동안 1편이나 완성하면 다행이지 싶어 좀 막막하기도 하다. 일단은 단편소설을 1편이라도 제대로 써보자는 마음이다. 강제성이란 말도 웃기지만, 어쨌든 단편소설을 써 내려갈 추진력을 얻기 위해 올해 안에 아카데미 수업을 한 번 더 들어보려 한다.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학생 때 들었던 문학 수업에선 시 구문과 그 거창한 의미를 해석하는 데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시란 시험공부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교환학생을 가서 미국 현대시 수업을 들었다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아 형태와 내용이 전부 기하학적인 시를 보고 기겁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시 특유의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세계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나에게 맞는 장르는 산문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브런치에서 조각글을 쓰며 생각이 바뀌었다. 하나의 소재 또는 주제를 짧고 굵게, 미학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즐거웠다. 작년에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한 뒤로 긴 호흡으로 글을 쓰는 데 조금 지쳐버려 쉬고 있는 중인데 아직까지 조각글을 쓰면서 지친다는 느낌은 받지 않고 있다.
그래서 소설 쪽은 아카데미 수업을 들을 때까지는 구상 정도만 하고, 평소에는 이렇게 틈틈이 조각글과 에세이를 쓰며 시의 세계로 슬쩍 들어가 보자는 다짐을 했다. 소설이든 시든 지금껏 잘 접하지 않아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지만,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쌓아 올리면 충분하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글을 쓰며 한 걸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