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미세먼지, 방은 쌓인 먼지
갑자기 황사와 미세먼지가 난리다. 1월 초순이니 한창 맹추위에 덜덜 떨며 패딩을 몇 겹씩 입어도 부족할 시기일 텐데, 좀 두껍게 입었다 싶은 날은 후끈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대 포근하다 못해 땀이 삐질 흘러나올 지경이다. 이런 날엔 텁텁한 공기는 덤이다. 며칠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흐릿할 정도로 밖이 뿌예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줄로만 알았다. 눈이나 비가 잔뜩 오려는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한동안 맑게 개인 청명한 하늘을 보다가 갑자기 앞에 있는 건물이 우중충한 윤곽으로만 보이는 광경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날씨 예보에서 언급하는 미세먼지 농도 수치보다 오히려 내 몸뚱이 상태로 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곤 한다. 마스크를 써도 입안에 까끌까끌한 느낌이 들고 목구멍은 퉁퉁 부어올랐다.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평소보다 말을 조금 더 해야 하는 일이 많긴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져 잘못하다간 목소리가 아예 나가겠다 싶었다. 이때는 얼른 미리 쟁여둔 도라지배즙을 먹어야 한다. 원래 기관지가 좋지 않아 예전부터 도라지류 식품을 챙겨 먹었다. 도라지청, 도라지정과부터 도라지즙까지 웬만한 건 다 먹어봤는데 조금이나마 달달하게 먹을 수 있는 도라지배즙이 나한텐 가장 잘 맞았다. 그런 이유로 집에는 도라지배즙이 두세 박스씩 쌓여 있다. 미세먼지가 나쁨으로 뜨는 날은 목 상태는 비상이 걸린다. 예전에는 봄철 황사에만 신경 쓰면 됐는데 이제는 겨울철에도 미세먼지에 시달릴 때가 많아졌다. 마스크와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었나 보다.
나는 보통 쉬는 날이면 동네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멍 때리며 창밖으로 자동차가 달리거나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 천상 집순이라 그 이상의 활동은 하지 않지만 아무튼 카페에서 할 일을 사부작대는 건 나만의 일상 루틴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주에는 미세먼지의 강력한 공격으로 얌전히 방안에만 있어야 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실컷 보다가 허리가 아파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뭐라도 할까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문득 책상이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이 활짝 펼쳐져 있고, 그 옆에는 컴퓨터용 선반 위에 마지막으로 언제 켰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모니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방에는 책꽂이와 필통을 포함한 수납함 주변으로 온갖 필기구와 노트와 메모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렇게나 방치해두고 있었나 하는 반성의 시간을 잠깐 가진 후 좀 치워볼까 했다. 물건들의 원래 위치만 잘 찾아주면 되겠거니 하며 슬쩍 모니터 뒤편을 보았고, 그곳엔 카오스가 있었다.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연필꽂이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책상 뒤에 뽀얗게 쌓인 먼지의 향연은 창밖의 미세먼지가 문제가 아니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먼지구덩이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필기구를 제자리에 놓는 걸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티슈 한 통을 통째로 들고 왔다. 결연한 표정으로 마스크를 끼고서 책상 전체를 닦고 또 닦아내기 시작했다. 분명 하얗고 뽀얀 먼지들이었는데 티슈에 묻어난 것들은 화산재처럼 시꺼멨다. 참혹한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이제야 치운다는 한탄이 뒤섞인 시간을 보낸 뒤에야 책상에 먼지를 걷어내고 빈자리를 낼 수 있었다.
방안이라는 좁은 공간에조차 내가 제대로 보지 않아 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곳이 있었다. 내 주변에 이렇게 한참을 내버려 둔 곳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먼지투성이 공간이. 바깥에 미세먼지가 떠다니는 것만큼이나 예민하게 신경 써야 할 틈새공간이다. 책상에 앉아 새까만 먼지가 잔뜩 쌓이기 전에 틈틈이 닦아줘야 하는 일들이 무엇일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