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일을 했다. 평소엔 손톱 끝이 하얗게 자라나는 꼴을 보질 못해 틈만 나면 싹둑 잘라내다 보니 손톱이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뭉툭한 상태다. 그래서 네일을 하려면 최소 약 2~3주가량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손톱 길이가 손끝 살에 닿을 정도는 돼야 결과물이 괜찮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짧은 손톱을 유지해온 탓인지 나는 손끝 살에 손톱이 비죽 나온 게 느껴지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손톱이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는지도 그때서야 깨닫는다. 예전엔 추리물이나 공포물에서 손을 휘둘러 얼굴에 상처를 낸다거나 손톱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과연 가능한지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몸을 긁거나 –심지어- 씻다가 피부가 긁혀 피를 보는 경험을 몇 번 해보니 손톱이 꽤나 훌륭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손톱이 길 때는 네일을 해야 그러한 위험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다. 두텁게 쌓아 올려 굳힌 네일 덕분에 손톱이 무뎌진다.
나는 겨울에만 네일을 한다. 네일 폴리쉬로 몇 겹을 덮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네일을 하면 손톱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온기가 떠다니는 다른 계절엔 네일을 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겨울에는 교복처럼 검정 롱패딩을 입고서(코트나 짧은 외투와는 헤어진 지 좀 되었다.) 아래위가 온통 시커먼 채로 다닌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칙칙하게 느껴져 시무룩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손톱을 기르기 시작한다. 인터넷에 코를 박고 예쁜 네일 이미지를 찾고 저장하며 설레어하다 네일숍에 간다. 손톱 모양을 둥글게 할지, 각지게 할지부터 손톱을 풀칼라로 꽉 채울지, 여백의 미를 살려 프렌치나 그라데이션으로 할지, 아니면 아예 이달의 네일 중에 하나를 골라 화려한 맛을 즐길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내 취향에 맞는 네일 디자인을 정해야 한다. 약 한 시간 동안 투박했던 손톱이 매끄러운 형태로 다듬어진다. 영롱하게 빛나는 10개의 작은 직사각형이 완성되는 순간은 마법을 보는 것도 같다.
아기자기한 색이 선명하게 박힌 손을 볼 때마다 역시 돈을 들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현실적인 감상과 함께 이 정도면 손톱 모델을 해도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만족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저번 달에는 눈사람을 손톱 위에 올려 귀여움을 한껏 즐겼다. 이번 달에는 연보라색과 화이트펄로 그라데이션 네일을 했다. 보랏빛과 흰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에 손끝에서 꽃잎이 피어나는 환상이 보이곤 한다. 눈사람도 귀엽고 좋았지만, 이번 네일은 참 무난하게 예뻐 마음에 쏙 든다.
연달아 네일을 하다 보면 손톱이 점점 얇아지는 게 느껴진다. 겨울에 네일을 한다 말하긴 했지만 겨울철 내내 매번 네일을 바꿔가며 하진 못한다. 스스로 정해 둔 마지노선이 최대 세 번이라 이제 네일을 즐길 수 있는 횟수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세 번째 네일을 지운 후엔 짧게 다듬은 후 자연 상태로 내버려 둔다. 그전까지 최대한 길어진 손톱에 적응하며 나만의 작은 행복을 만끽해야지. 연말연시를 아우르는 겨울날은 내겐 알록달록한 네일을 하는 계절이다. 손톱 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세상을 구경하다 보면 찬바람에 얼어붙은 손끝도 조금은 덜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