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자세가 많이 좋아지셨어요~!"
며칠전 내가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 학원 원장님이 수업이 끝나고 짐을 싸고 있던 나에게 특급 칭찬을 해주셨다. 처음 왔을 때보다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며 엄지를 치켜 세우며 칭찬을 해주시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늘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이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달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는 편이었다. 운동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냥 다 못했다.하지만 운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에너지와 생기 넘치는 모습이 부러워 1월이면 항상 새해 목표로 운동을 다짐하곤 했다.
대학생 때는 아침 요가를 등록했다가 한 달만에 그만둔 적도 있고 몇년 전에는 퇴근 후 집근처 필라테스를 등록했다가 두 달만에 그만둔 적도 있다. (생각해보니 운동을 한다고 수업을 등록하는게 요가 아니면 필라테스 였는데 그게 변하지 않았던 걸 보니 그 때도 요가나 필라테스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긴 했나보다.)
작년 이맘때 쯤 회사 점심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반으로 늘면서 점심시간에 밥만 먹기엔 조금 아까운,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유시간이 생겼고 그 동안 생각만했던 운동을 점심시간에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발레를 등록했는데 유연성이 떨어지는 내가 따라가기엔 조금 버거웠다.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 중에서 유연성이 가장 떨어지고 수업에 잘 따라가질 못하니 금방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발레학원이 회사랑 너무 멀어서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몇번 빠지기를 반복하다가 등록한 기간이 지나 재등록을 포기,또 다시 흐지부지 되버렸다.
그 후 회사를 같이 다니는 언니를 쫓아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마의 두 달을 넘어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 꾸준히 일주일에 세 번, 점심시간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다. 발레보다는 내가 조금 더 쉽게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흥미도 아직까지 잘 유지되고 있고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오랜 기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중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운동복을 챙겨서 회사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필라테스 학원에 간다.
초반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가다가 김밥을 사 먹고 운동을 한 날이 있었는데 운동을 하는 내내 더부룩한 배에 힘도 잘 안들어가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밥을 먹는 시간이 항상 애매해서 운동을 하기 전에 밥을 먹는게 더 좋은지, 운동을 한 후 먹는게 더 좋은지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운동을 하기전에 밥을 먹는 경우에는 적어도 2시간 전에는 먹는게 좋다는 글을 보고 요즘에는 10시쯤 과일이나 두유를 꺼내 아침겸 점심을 먹고 운동을 가곤 한다. 이전에는 커피 한잔으로 오전 4시간을 버텼는데 이제는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고나 할까.
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습관도 생겼는데 바로 칼로리를 관리하는 것.
운동을 하다보니 내 몸이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내가 얼마만큼 운동을 하고 있는 건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도 살은 왜 빠지지 않는 건지 궁금해졌다. 핸드폰에 있는 삼성헬스를 이용해서 내가 먹는 음식의 칼로리를 입력하고 운동을 통해 소모된 칼로리를 검색하는 방법으로 조금씩 칼로리를 신경쓰기 시작하다가 10월 초 남편이 워치를 사준 후부터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내가 먹은 음식들을 기록하고 있다. 활동을 통해 소모된 칼로리는 저절로 계산되다보니 내가 먹은 음식들만 입력하면 오늘하루 내가 소모한 칼로리와 음식을 통해 먹은 칼로리를 계산해서 권장칼로리에 비해 초과되었는지, 부족한지를 알 수 있다. 거기다 수면관리까지 체크되다보니 칼로리뿐 아니라 전체적인 내 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대 때는 내가 얼마나 먹는지, 내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관심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게 내 몸이였는데도 나는 무언가를 이루고 무언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했던 체력은 바닥을 찍었는지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고 몸은 무거웠고 어깨와 목은 항상 뻐근했다. 이런것들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가기전에는 가만있어도 피곤한 몸에 스쿼트니 크런치니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데 막상 하고나면 피곤했던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피곤할수록 몸을 움직여줘야한다는 걸 운동을 하며 깨닫는 요즘이다. 그리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다.
그 동안 작심삼일로 끝났던 운동을 그래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운동',그리고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갈 수 있는 '시간'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쉬고 싶은 날도 있고, 몸이 안 좋은 날은 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은 출석률을 보이고 있다.
내가 그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던 건 끈기나 독한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길 수 있는 운동과 부담되지 않는 시간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끈기가 없다고, 독한 마음이 없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그냥 나에게 맞는 방법과 시간을 찾으면 그만이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너 좀 자유로워졌구나' 라고 했다.
'그러게, 나 조금 자유로워졌나봐' 하고 웃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끈기가 없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도 참 많이 속상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고치고 싶었다.나는 항상 내가 아닌 내가 바라는 완벽한 이상형을 목표로 두고 그 모습이 아니라며 혼자 실망하고 자책했다. 그리고 내가 설정한 완벽한 내가 되기 위해 무리했다가 금방 지치고 쓰러지곤 했다. 이제는 내가 되고싶은 어떤 완벽한 사람이 아닌 지금 내 모습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맞는 방법과 속도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고 조금 나아졌다.
일주일에 세 번,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운동이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뿌듯함, 그리고 아주 조금 나아진 체력은 가져다 주었다.
무릎을 핀 상태로는 종아리 잡기도 힘들었던 내가 발목까지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날, 윗몸일으키기를 예전보다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어느 날, 내 삶에서 느꼈던 공허함이 약간은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