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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Nov 17. 2019

피아노와 우쿨렐레

퇴근 후에는 우쿨렐레를 치자

어린 딸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걸 보면 음악을 즐기는 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능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나보다 나를 둘러싼 '밖'을 더 많이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노래에 맞춰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노래를,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몸을 의식적으로 멈추며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음악을 듣고, 노래부르고 연주하는 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7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움은 의무로,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은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로 바뀌어 버렸다. 중간에 학원을 바꾸며 좁은 방에 피아노와 갇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를 클래식을 열 번 스무번씩 치던 날들이 피아노를 멀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 피아노를 그만두게 됐고 10년이 흐르고 대학생이 되서 다시 악기연주에 대한 욕망이 지난 날 피아노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방학동안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지고 연습했는데 두 달도 안되서 또 다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마의 두달...) 지금 생각해보면 10년이라는 공백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후에도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못하고 잊을만 하면 학원을 등록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올해 가을, 내인생에서 피아노를 완전히 놓아주기로 했다.
 

솔직히...피아노는 참 매력적인 악기지만 20대가 되서 다시 시작하는 나에겐 참 어려운 악기였다. 악보를 보는 것도 어렵고 코드를 외우는 것도 어려웠다. 기본 코드를 넘어 취미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할 턱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높게만 느껴지던지. 
 

하지만 악기연주에 대한 욕심이 들 때마다 '그래도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게 피아노니까' 라는 생각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를 반복했다. 피아노를 못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미라고 말하기도 뭐한 그런 시간들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조카가 피아노가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올해 초 등록한 피아노 온라인 강의를 몇 달 째 듣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게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해야하는데 하지 못하는, 부담스러운 일로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피아노를 조카에게 주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악기를 찾다보니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알게 되었다. 입문자에게 가장 턱이 낮은 친절한 악기라는 설명에 유튜브에 우쿨렐레 동영상을 검색해 연주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코드 두 개로도 한 곡을 연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쿨렐레 만의 청량한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며칠 전부터 중고로 싸게 우쿨렐레를 사서 유튜브를 보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노래 세네 곡을 더듬더듬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피아노를 잡고 씨름하던 때와는 다르게 그냥 못해도 즐겁게 연주 하고 있다.

 

코드 두 세개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고 코드를 잡는 법도 쉬워, 잘하는 게 아닌데도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것이 참 즐겁다. 힘들지만 즐겁다,어렵지만 즐겁다가 아니고 그냥 즐거워서 좋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퇴근 후에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점도 나에겐 참 매력적이다.


요즘은 거의 매일 퇴근 후 우쿨렐레를 연습하고 있는데 연습시간은 그리 길진 않다. 

보통 아이가 밥을 먹을 때라던가, 남편이 아이를 씻기는 날, 또는 남편이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내가 우쿨렐레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쿨렐레를 치며 동요를 불러주면 항상 박수를 치며 '엄마 기타 너무 잘친다' 라고 말해주는 딸이 있어 더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
 

피아노를 놓고 우쿨렐레를 시작하면서 예전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은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하루종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만큼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지금은 내 상황도 변했고 내 마음도 변했다.

  

피아노로 대변되는 나의 지난 과거를 놓아주니 이제서야 그토록 원하던 '연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 미련 하나를 버리면 딱 그만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 보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연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즘,예전보다는 그래도 조금 충만한 하루를 보냈나 싶기도 하다. 우쿨렐레를 앞으로 얼마나 칠지, 당당하게 취미라고 꺼내놓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쿨렐레로 조금 더 즐거운 삶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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