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고 커피 한 잔으로 업무를 시작, 점심시간을 보내고 오전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오후 4시쯤,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이제 조금 쉬어볼까라는 마음으로 꺼내드는 건 커피가 아니라 차다.
차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던 나의 20대의 흔적이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초반 1~2년 정도는 어떻게든 회사를 벗어나려고 부던히도 애를 썼다. 대학교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돈을 버는 것 이외에 내 삶을 대변해 줄 내 천직이 무엇일까를 끊임 없이 고민했었고 전공을 살려 입사한 후에도 그 고민은 계속 됐다.
퇴근을 하면 나는 항상 내 천직을 찾기 위해 매일 어딘가를 쏘다니곤 했는데 처음에는 카페를 열겠다고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을 끊고 토요일마다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주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명동에 있는 핸드드립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 두달 정도, 커피를 배우면서 '내가 그렇게 커피에 예민한 편은 아니구나', '나는 커피를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이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순 없겠구나' 라는 걸 깨닫고 그냥 즐거운 소비자로 남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관심을 갖기 시작 한 것이 차다.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더라. 구체적은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커피를 배우다가 차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우연히 사게 된 트와이닝의 얼그레이를 시작으로 관심사를 점점 넓혀 가다가 압구정에 있는 티소믈리에 학원을 등록하고 두 달동안 전문적인 강의를 듣게 됐다.
차에 대해 알아가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홍차 뿐만 아니라 백차를 시작으로 흑차까지 찻잎에 물만 부었는데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차라는 것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커피와는 다르게 티소믈리에가 되어야 겠다! 는 그때는 확고했던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티소믈리에 강의를 들은 후 오설록이나 유명한 중국 찻집 등에 지원서를 넣고 면접도 두 세 번 보았다. 그 중 한 곳에서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서야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직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망설여졌고 그렇게 하면 내가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도 커피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직업이라는 것이 애정만으로 선택할 수 없는 극히 현실적인 먹고사니즘과 연결되어 있다보니 애정만으로, 선택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나는 안정을 추구하는 안정주의자니까 위험이 큰 도전은 시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을 변화시켜줄거라 믿었던 차는 지금 나에게 좋은 취미생활로 남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 가졌던 차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전부 직업으로 연결되기엔 힘든게 현실이니까. 그것을 깨달은 것 뿐이다.
지금도 종종 마시고 싶은 차를 구매해서 사먹곤 하는데 예전에는 종류별로 차를 모아놓고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더 많았다면 지금은 딱 내가 마실 수 있을 정도만 구입해서 즐기고 있다.
퇴근 후 아이를 재운 늦은 밤이나, 주말 오후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도 역시 커피보다는 차다. 찻잎에 물을 부었을 때 피어오르는 차의 향이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그리고 나는 차름 좋아하는 구나 라는 마음을 되새겨 준다.
차를 마시는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차가 우러나오는 3분 동안의 시간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여유를 나를 위해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차를 우리다 보면 초조하고 급한 마음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