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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Nov 17. 2019

우리 일 년에 한번은 비행기를 탑시다


결혼 초 남편과 나는 돈이 부족해도, 시간이 없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자고 했다.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단어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그렇지 않을까.

 

남편과 나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여행을 기다리며,지루한 출근길을 버티어 내곤 했다.
 결혼한 2014년에는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갔다 왔고 그 후 보라카이, 괌 그리고 올해 딸과 함께한 베트남까지. 일 년에 한번 여행을 가기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 처럼 그렇게 꾸준히도 여행을 갔다.

 

아이를 갖고 나서도 임신한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홍콩의 거리를 거닐었고 아이가 너무 어려 같이 여행을 가기 어려웠던 재작년에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남편과 둘이서 괌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작년엔 두 돌을 앞둔 딸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아이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게 처음이라 둘 다 조금 소심해졌었다. 비행기 안에서 울면 어쩌지, 열이라도 나면 어쩌지 이런 저런 걱정을 했는데  여행내내 아이가 생각보다 잘 지내줘서 제주도에서 돌아오자 마자 베트남에 가는 비행기를 끊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날이 왔다. 첫 날 밤비행기로 베트남에 도착해 호이안 숙소로 이동했다. 첫날밤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 이튿날 아침 조식을 먹고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안방비치에 가서 반나절을 아이와 물놀이를 하며 놀았다. 아직도 이때 놀았던 바다이야기를 아이가 종종 하는 걸 보면 베트남에서 처음 본 바다가 꽤 인상적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부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저녁에 가기로 했던 올드타운도 가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픈 아이를 걱정하며 이틀을 보냈다. 그다음날 다낭으로 출발해 숙소를 잡고 병원을 갔다. 그동안 몇번의 해외여행을 갔지만 현지 병원에 가본 건 처음이라 남편과 나도 꽤 긴장했다. 병원에 가기 전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찾고 어떤 병원에 가야할지, 가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검색한 후 병원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받은 약이 잘들어 그 이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이가 열이 오르진 않았지만 여행 내내 아이가 혹시 아플까 조심조심하며 숙소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는 빨리 돌아가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다녀오고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그래도 갔다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꾸준히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일년에 한번 밖에 안되지만 우리는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여러 곳을 쏘다녔다. 아이가 태어나고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이 돌아다녔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길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당일치기나 일박 이일 여행을 조금씩 꾸준히 다니고 있다.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우리 가족은 종종 공항에 놀러가기도 하는데 비행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그냥 구경하러 가는 공항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공항보다 훨씬 여유롭고 볼것도 먹을 것도 많다.


 어떤 날은 공항근처 호텔에서 일박을 하면서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저녁을 먹으로 공항에 간 적이 있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과 여행을 끝마친 사람들 사이에서 무거움 짐도 없고 늦을 걱정도 없이 그렇게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창밖으로 비행기를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공항의 그 왁자지껄한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여행에 대해 든 생각이 하나 더 있는다.

며칠전 내년에 어딜갈까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 일년에 한번 해외 여행가는게 니가 일년동안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돼?'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우리에게 여행은 내 일년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다.


여행이 일년 동안 회사를 다니고 일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정도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여행이 갖고 있는 새로움, 설렘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특히 같은 일을 오래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매너리즘인지 권태로움인지 지루함에 빠지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특히 이미 결혼 해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일상이 더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다.


 삶은 더이상 새로운 자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지 않다, 물론 지금 느끼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이 너무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극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설레임을 바라곤 한다.


 내가 가진 안정과 편안함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느끼고 싶었던 바로 그 낯선 것에 대한 두근거림을 선사해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기 때문에 일년 내내 우리는 여행을 기다리고 추억하는게 아닐까. 


몇년 전 까지만 해도 퇴사를 하고 일 년,이 년씩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하루하루를 보내는게 참 답답한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는 우리도 우리에게 맞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내 일상을 유지하며 일 년에 한 번 씩 해외여행을 가는 것.

 

우리는 여행을 가면 그 곳의 모습이 그려진 여행자석을 꼭 챙겨오는데 지금은 우리집 현관문에 그동안 모은 여행자석을 사진과 함께 붙여놨다. 10년,20년,30년 동안 매년 한 군데씩 가다 보면 언젠간 내 버킷리스트인 세계여행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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