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카피룸룸. 일어나요 바람돌이 모래의 요정. 이리 와서 들어봐요 우리의 요정. 우주선을 태워줘요. 공주도 되고 싶어요. 어서 빨리 들어줘요 모래의 요정" 나는 그때 집으로 향하는 학원차 안에서 한참 유행 중이던 만화 주제가를 신나게 부르고있었다.
"너는 공주가 아니지,장미(친구 이름)가 공주지." 옆에 앉아서 내 노래를 듣던 한 살 많은 오빠가 말했다. 내가 좋아하던 오빠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나이 8살 때 겪은 첫 실연이었다.
나는 내가 공주라고 한 적이 없어. 노래 가사가 그런 거지.
노래도 못 불러? 그래, 장미가 공주처럼 예쁘긴 하지. 그리고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데다가 성처럼 아름다운 집에서 사니까 진짜 공주 같긴 하다.
그렇다고 나한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면 난 속상해.
평생 공주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자기 처지와 상관없이 공주가 되고 싶다고 소원을 빌 수는 있는 거잖아.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련한 아이는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을 뿐이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런 깨달음에 확신을 주는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일 때의 일이다. 연극배우가 학교에 찾아와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쳐 주었다. 배우 선생님은 나에게 콩쥐 팥쥐 연극에서 팥쥐 역을 맡으라고 권했는데, 나는 악역인팥쥐 대신 주인공인 예쁜 콩쥐가 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가 연극에서 연기할 팥쥐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팥쥐와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극 중 팥쥐는 아주 곱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순진했던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기꺼이 팥쥐가 되었다. 그리고 연극 당일 선생님이 내 얼굴에 주근깨를 꼼꼼히 그릴 때 내가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예쁜 팥쥐라고요. 이건 오해예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후에 난 당연하다는 듯 주변인으로 살았다. 신데렐라는 따로 있으니 내가 입을 옷은 내가 지어 입어야 했고, 작은 꽃신을 신어 원님에게 시집가는 것은 콩쥐였으므로 나는 내발에 맡는 짚신을 엮어 만들고 콩쥐네 잔칫집에 가서 열심히 전이나 구워야 했다.
내게 마술봉을 든 요정 할머니나 깨진 장독을 막아줄 두꺼비가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다.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술 같은 일은 귀족적이고 우아한 태도의 사람들에게 일어났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지점으로 돌아왔다.
종말을 맞이하는 악역만 피해달라며 빌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왔다. 내 삶에 큰 자부심 가질 일 없는 아주 소소한 인생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나는 여전히 엑스트라였다.
내가 어릴 때 그랬듯 5살이 된 딸도 공주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명작동화에 나오는 공주 이야기를 몇 차례 읽은 후였다. 줄무늬 티셔츠에 레깅스를 즐겨 입던 딸은 공주처럼 긴 드레스를 찾기 시작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놀이도 시작되었다. 가물가물한 공주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라댔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더듬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참 공주 노래를 부른 후였다.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 노래도 불러줘
응? 엄마 노래?
나는 여태껏, 주인공의 세계를 꾸며주는 소품 같은 사람이었다. 매력적인 주인공의 주변인이었고, 행복하게 살았느니 말았느니 하는 엔딩을 알릴 필요가 없는 무명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나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인생을 아이가 묻고 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노래를 불러줘야 할까? 어떤 음조에, 어떤 빠르기에, 어떤 가사를 붙여야 할까?
그것은 비극적일까, 환희에 차오를까, 잔잔할까, 흥겨울까, 평화로울까, 의문스러울까?
아이의 질문에 나는 순식간에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죽기 전 사람들의 눈앞에 주마등이 스치듯.
나는 익숙한 멜로디에 사랑스러운 딸을 낳은 한 여자 이야기를 불러주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노래였다. 내가 주인공이었다.
멋진 모험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고 고귀한 외모와 우아한 태도로 선망받은 적도 없는 한 여자의 이야기
하지만 가장 귀한 것을 품에 안아본 적 있는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 노래 하나로 이전과 같은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나의 이야기.
그래, 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신데렐라가 된 딸은 비가 오는 날, 놀이터 구석구석을 하얀 수건으로 닦았다. 나는 그날 청소를 시키는 심술 많은 새엄마가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