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개월 때 뱃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담당 교수님이 관련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분이라서였다. 성별에 크게 상관없었으나 나는 내심 딸을 바랐고, 남편은 대놓고 딸을 바라던 참이었다.
나는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나의 성을 따르자 했다.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자신의 성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연세 많으신 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뒤로 넘어가신다며 곤란해했다. 당장엔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 이름을 짓고, 시부모님이 세상에 안 계실 때 엄마성으로 바꾸자며 협상해 왔다.
그때 나는 조금 세게 나갔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아이의 보호자는 부모이므로 부모가 이름을 지으면 되지 양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던 것도 나고, 목숨을 걸고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는 것도 난데 관습적으로 아빠의 성을 따라 아이 이름을 짓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평등하지 않았다. 실제로 육아휴직도 내가 할 계획이었으므로 주양육자도 나일 것이었다
너무 따지고 드는 것 같은가?
그렇다. 바로 그 이유였다. 엄마인 나의 성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고 싶었던 것은 우리 아이가 그렇게 따졌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옳다고 믿는 것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따졌으면,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가 아이로 하여금 어떤 진실에 다가가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이다.
엄마의 성을 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쓸 때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 때마다
아이는 투명한 눈으로 삶을, 세상을, 그리고 말씀으로 인생과 세상을 창조하셨다는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특히 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으면 했다. 나는 한국의 여성이기 때문에 가부장제도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나의 할머니, 시어머니, 엄마, 고모들, 이모들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아득하고 슬픈 것인지 알았기에나의 소중한 딸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남편은 내 제안을 곰곰 생각해 보더니 엄마의 성 따르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를 할 때 엄마의 성을 따르겠다는 항목에 체크를 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생신고를 할 때가 아니고, 혼인신고를 할 때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너무나 당황스러운 동시에 비겁한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인 내가 그렇게 깨어 있지도 않으면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면서, 아이에게는 진실을 마주하는 용감한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렇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아이의 삶이 평탄하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진리를 얻되 세상의 향락도 부귀도 삶의 안정도 평범한 행복도 함께 누렸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과도기적 어설픈 페미니스트에 타락한 신도였다.
나는 아이 이름을 내 성으로 짓기 위해 법원에 가서 신고를 하고 관련 재판을 받을 만큼 용감하지는 않았으므로 아이는 아빠의 성을 따라 조 씨의 성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 이름 짓는 해프닝은 실없이 끝났다.
이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던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꽤 흘러서도 종종 남편에게 아이 성을 지금이라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딴지를 걸었다.
이윽고 둘째가 태어났다. 다시 딸이었다. 나는 첫째 딸은 아빠의 성을 따랐으니 둘째 딸만큼은 나의 성을 따라 짓자고 하였다.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좋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친정 엄마가 나를 보고 미쳤다며, 아이 둘을 성이 다른 아이들로 키울 거냐며 성을 냈다. 사실 나도 그게 고민이었다. 한 아이는 조 씨, 한 아이는 이 씨. 이래도 괜찮을까 싶었다.
그래, 둘이 자매인데 다른 성으로 키울 순 없지. 엄마 아빠가 성에 따라 자신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엉뚱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하고 나는 다시 나에게 승복했다.
맞다, 보시다시피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어설펐다.
나는 호기롭게 현행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결국 지금 조 씨 세명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것이 아쉽다.
덧붙여, 나는 나를 어설프다, 과도기적이다라는 말로 포장하며 성평등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믿는 것을 행동하는 용기의 결여를 두둔하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를 수식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위로와 변명을 위함이며, 다음 시대를 살아갈 세대에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책임을 묻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이전 세대의 것보다 훨씬 넓고 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가계부
지출: 첫째, 둘째 네임 스티커: 9,800원
아이 킥보드, 자전거 등에 붙여 주려고 네임스티커를 샀다. 첫째 아이는 이제 다섯살이니,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