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 도서관엘 가려고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두 아이들과 함께 하는 두 번째 버스행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왕복 3만 원이 넘는 택시비가 부담스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 도서관엘 간다 치면 택시비만 대략 12만 원 드는 것이었다. 우리 살림으로선 꽤 큰돈이었다.
거기에다 간식으로 먹을 우유랑 빵 등을 사다 보면, 나들이 예산을 쉽게 뛰어넘었다.
그 돈이면 근처 키즈 카페에 가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키즈카페 갈 때마다'틀어 놓은 음악소리가 요란해서 내 혼이 달아날 것만 같은데 음악 소리 좀 줄여주실 순 없나요?' 하는 부탁을 마음속으로만 열 번 넘게 하므로간단히 유혹을 밀어냈다.
무엇보다도 첫째 아이가 버스 타는 것을 무척 신나 했다. 아이는 버스에 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좋은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첫째를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승객들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는데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나는 둘째를 안고 버스 의자에 앉아서 창을 통해 구름 낀 하늘을 보았다. 나는 그 많은 구름 중에서도 선이 강하고 분명한 쪽이 더 좋았는데그런 모양의 구름에서는 동화책에서 본 비의 요정이 정말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구름의 한쪽은 회색이었으나 또 다른 쪽은 하얀색, 또 다른 쪽은 금색이었다. 태양은 구름에게 햇빛을 고루 비춰주진 않았지만 차가운 쪽이든, 뜨거운 쪽이든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몽실몽실 거리고 있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엘 탔다고 하니 힘들지 않냐며 걱정을 했다.
엄마도 나 어릴 때 두 아이 데리고 자주 그랬으면서. 괜찮다!
엄마는 애교 섞인 나의 핀잔에 웃었다.
그 순간, 엄마의 머릿속을 스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우리 남매와 부산 남포동 시장에서 자주 먹던 호박죽의 노란빛이었을까? 아니면 두 아이 붙들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건넌 모질었던 젊은 시절이었을까.
흔들리던 버스에서, 우리 엄마 참 고단 했겠다.
그래 눈감으면 닿을 듯해도 모두 지난 세월이 되었지. 노란빛 호박죽도, 두 아이를 붙들던 연약한 손도.
나는 엄마에게말없는 위로를 건넸다.
엄마는 말없이 위로를 받았다.
우리가 주고받은 위로는 한쪽은 회색, 한쪽은 흰색, 한쪽은 금색의 하늘 구름처럼 고요하게 우리의 마음속을 떠 다녔다.
나는 갑갑하다며 버스 바닥에 드러눕는 둘째 때문에 간절히 도착지에 가닿길 바랐다. 버스에 내리고도 십 분을 걸어 드디어 우리는 시립 도서관엘 도착했다. 오늘은 유독 더웠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책이 있는 코너를 먼저 갔는데, 둘째 아이는 만류하는 나를 뿌리치고 사방을 뛰었다.다행히 우리밖에 없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던 혹은 있을 뻔했던 이용객들에게 곤란한 표정과 눈빛으로 사과를 해대며 아이를 붙잡았다.
잠시 내가 읽을 소설도 빌리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간단히 포기했다. 아직 젖먹이를 키우는 내게는 그럴 짬이 없었다.
소설. 소설이라, 글쎄, 글자 없는 내 인생을 어떠했던가.
소설을 알기 전, 시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갇힌 나의 인생에서는 축축하고 불결한 곰팡내가 났다. 이 냄새는 내 코를 찌르고 폐 속을 할퀴며 내 안 깊숙이 들어와 혈관 속에 바글거리는 혈구들과 함께 온 몸을 돌았고, 결국 나의 세포들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곰팡내로 검퍼렇게 물들였다.
곰팡내로 가득한, 뻔한 서사의 인생에 실망하려던 참에 도란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눈이 부셔서 동공이 쉭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고 그곳엔 환한 빛이 있었다.
언젠가 맡았던 익숙한 비누향기에,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보폭을 작게 벌려 걷다가 곧 바닥이 발바닥을 세게 치는 느낌이 들도록 성실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내가당도한 곳은 소설 속 세계였다. 속설 속 글자들이 수다스럽게 도란대며 구름도, 연한 색 풀잎도, 가난한 어미와 아들을 구원하는 자비로운 북풍이 되기도 하는 곳.
글자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엇이든지 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곳!
그곳을 거닐던 나는 어느새 빨래 비누로 박박 빨고 탈탈 털어 따뜻한 햇볕 아래 걸어둔 셔츠처럼 뼛속까지 개운해졌다. 상큼한 비누 향기와 함께.
그렇다. 소설을 통해 나는 그런 식으로 절망 속에서 살아남았다.
엄마가 되면서 나의 소설은 잠시 내려뒀지만
읽던 페이지에 책갈피는 꽂아 두었다.
언제든지 다시 펼쳐서 뒷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오늘 우리는 첫째 아이가 읽을 전래동화만 6권 빌렸다.
지역 시립도서관. 오전 시간대라 이용객이 우리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가계부
낮잠 잘 시간이 되어 졸리다며 잠투정을 하는 둘째 덕에 당당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투정해주어서 고맙다. 기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