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하굣길의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나는 앉을자리가 없어서 손잡이를 잡고 버스 뒤쪽에 서 있었다. 버스가 거북시장 앞 정류장에 섰을 때 일찍 장사를 마친 할머니들이 커다란 대야를 힘겹게 이고 지고 끌며 버스에 올랐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다 똑같은 억양으로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생김새만큼이나 사람에 따라 그 말 소리나 억양이 다 다른데, 할머니들은 그중에서도 아주 강한 악센트를 가지고 계셨다. 언뜻 들으면 일본어를 하시나 싶었지만 자세히 들으면 우리말이었다. 버스에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뒤섞였으나, 원래 그랬다는 듯 조화로웠다.
초여름날 버스 안의 공기는 녹음이 빚어낸 싱싱한 것이 아니라 커다란 신의 콧속을 한 바퀴 돌고 나온 듯 눅눅하고 후덥지근했다.
열어둔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도 비슷하게 그러했는데, 승객들은 그 바람이라도 쐬고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당시 통영의 죽림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원문 고개를 통과해야 했다. 원문 고개에는 문둥이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고 지난날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살았더란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혹시 한센병에 걸려 모습이 다른 사람이 마을에 나오지 않았나 하고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그곳엔 푸른 바다도 있었다.
버스는 그 고개를 지나는 중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자주 그랬듯, 나는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있느라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나의 육체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그립고 슬픈 냄새였다. 무엇이 그리운지, 슬픈지 설명할 수 없었으나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나는 평생 오늘을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꽤 거칠어서 내 머리카락도 교복 자락도 흔들어 놓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햇살이 부드럽게 구름을 매만졌다. 수줍게 비치던 해가 바닷물을 찰랑댔다. 바닷물이 원만한 심장의 전기적 곡선처럼 뛰어오를 때마다 해는 바다의 모든 순간을 남김없이 비추었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운전을 하느라, 혹은 공상에 빠져 있느라 자신에게 무심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자연은 그렇게 예술적 경지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지,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다른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만으로 충분했다.
살면서 외롭고 힘이 들 때 그 장면은 어미가 어린아이를 위로하듯 나를 품어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날 문득 알아차린 것처럼 팍팍한 내 삶도 사실은 그렇게 발견되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된다고. 너는 이 모습 그대로 그날 그 하늘처럼, 바다처럼 감동스럽다고.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버스를 타거나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날 때에는 노을이 지고 바다가 반짝이던 그곳을 유심히 보았지만 다시는 그것을 마주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바다와 그 하늘이 어디 간 게 아닐 텐데.
이제야 깨닫는다. 아마도 그때 그 풍경과 감각은 온 우주가 정교한 수학적 연산을 통해 그때 그 소녀를 위해 준비한 사려 깊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과거의 그 시간은 소녀의 영혼 속에 새겨져 소녀가 키우는 아이들을 통해 미래로, 미래로 전해질 것이다.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첫째 아이가 오크밸리에 있는 놀이공원에 가자고 졸라댔다. 놀이공원은 아빠 월급 받으면 가자하고 대신 간현 유원지에 데려갔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마음껏 물놀이, 모래놀이를 했다. 아이는 영원히 놀 것처럼 놀았다.
내 딸아!
엄마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먼 훗날 이 자연을 떠올릴 때 온 우주가 너를 위해 바람을 일으키고, 오랜 세월 바위를 깎아 모래를 만들고, 나무에 파란 잎을 돋워 냈으며 , 흐르는 물은 바다가 되었다가 비가 되었다가 만년설이 되었다가 결국 네가 만든 모래성을 둘러싼 강물이 되었음을 기억해 다오! 그때 너의 영혼은 찬란하게 빛났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