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벗이 있다면!

이국으로 떠나는 J에게 쓰는 편지

by 열매 맺는 기쁨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걸걸한 농담을 하는 네가 참 좋았다. 특히 세상의 부조리함을 꼭 집어 욕한다거나, 돈에 붙은 동그라미들을 더하거나 빼며 가계 살림이나, 교육비, 경제적 자립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위에 있는 허점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할 때 너는 만물상 같았다. 커다란 주머니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쏟아내며 이국을 떠올리게 하는 만물상.

나는 그런 네가 사랑스러웠다. 너에게는 내게 없는 세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에 예민한 나와 달리 눈치 보지 않고 속을 그대로 내어 보이는 너는 한여름에 얼음 동동 띄워 먹는 믹스커피 같았다. 아빠 흉을 보며 엄마 편을 드는 엉큼한 고모처럼, 빛바랜 사진 속에 새초롬히 앉아 있는 우리 외할머니처럼, 너는 내게 왠지 그립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타고난 서울깍쟁이에 셈에 밝고 냉철해서 손해는 절대 안 보고 살 것 같은 너는 나에게만큼은 참 너그러웠다.

뱃속의 아이랑 소고기 사 먹으라며 돈을 부치는 네가, 아이 첫 생일이라며 돌반지를 사 오는 네가, 딸 옷은 왜 이리 예쁘냐며 공주옷 사서 보내는 네가, 남편한테 알리지 말고 너를 위해 쓰라며 꽤 큰돈을 쥐어주는 헛똑똑이 같은 네가 나는 참 고맙고 좋았다. 너는 말은 차갑게 했지만 마음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여러모로 달랐지만, 가슴 한복판에서 진심을 주고받았다.


사랑하는 J야!

너에게 폭풍이 몰아 치는 바닷길을 헤쳐나가는 배처럼 처절하고 위태로울 때 있었으나, 너는 그 시절을 꿋꿋이 헤치고 이토록 당당히 서 있구나! 네가 당도한 그곳은 참으로 단단하고 안전해 보인다. 너는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곳을 마음껏 누릴 자격이 있어.

폭풍은 지나갔고 넌 향기로운 곳에 발 딛고 있으니 이제 좀 느긋해져도 괜찮을거야. 바람에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 실컷 낮잠을 자려무나.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너의 피부를 간지럽히고 넌 기분 좋아 미소 지을 테지.


나는 거칠고 큰 파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나는 살아야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치던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때 너는 정말로 용감했지. 네가 행복해 보이니 나도 참 좋구나.


J야! 먼 곳으로 떠난다지? 나는 벌써 네가 그립다.


너 사는곳에 함께 가서 살자며 우리 부부에게 오랫동안 당부한 네가 참 귀엽다. 그리고 고맙다 J야.


우리 떨어져 있으나, 나는 온 마음으로 너를 응원하겠다.


네가 그곳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길, 즐겁게 일하길,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길, 저무는 해가 네가 사는 집의 지붕을 두드릴 때 주홍빛 낭만을 발견하길, 깊은 밤이 되면 회복과 쉼을 누리길. 그리고 오래도록 평안하길.


너와 너의 가족이 그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언제까지나 기도한다. 내가 믿는 신이 너를 인도하리라.



PS: J야, 다정한 손으로 남편을! 상냥한 입아들을!



멀리 외국으로 떠나기 전 작별 인사를 하러 찾아온 J네 가족과 점심을 함께 먹고 잠시 산책을 했다. J의 아들과 우리집 첫째딸의 모습. 다정하게 손잡고 가는 모습이 참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가계부



지출: 친구네 가족과 점심 식사: 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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