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세 자루를 훔치고

그때 그 말괄량이 소녀를 위한 항변

by 열매 맺는 기쁨

누군가 내게'고향이 어디에요?' 물으면 나는 '통영이에요'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내가 태어나고 오랫동안 자란 곳은 부산이다.


내가 살던 곳은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후미지고 가난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그 근처에 김해공항이 들어서 있다. 동네에는 공장의 폐수와 생활 쓰레기로 썩어가는 낮은 개천이 있었고, 그 옆에 가짜 메이커 신발을 만드는 영세한 공장들이 몇 있었다.


쓰레기를 태우는 공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았는데,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입성이 후줄근했다. 해 질 녘까지 밖을 쏘다니며 놀다가 집에 돌아온 아이들의 몸에서는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났다.



나는 월셋집 앞에 공동으로 쓰는 평상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오르내리고, 동네 오빠들과 치토스 과자 봉지에 들어 있는

따조 따기를 하면서 놀았다. 발이 닿지 않는 큰 어른 자전거를 빌려 안장에 앉지 못하고 선채로 페달을 굴려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담벼락을 뛰어넘던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못 말리는 말괄량이였다.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하굣길에 문구점에 들려서 연필 세 자루를 훔쳐서 달아났다. 문구점 주인아주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내 뒤를 쫓아 달려왔는데, 나는 배고픈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공포에 잠식된 채 맹렬하게 도망쳐야 했다. 잡히면 경찰서에 가게 될 거야. 감옥에 갈 거야 생각하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 아주머니는 한 뼘씩 가까워있었다. 아주머니가 내 옷자락을 덥석 잡았을 때 나는 이제 끝이 났구나 하고 확신했다.


내 몸에서 나던 쓰레기 냄새, 그 매캐한 가난의 냄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 어린것이 벌써부터 이러면 커서 어찌 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생계를 뒤로 한채 여기까지 나를 뒤쫓아와서 엇나갈 미래의 비행청소년을 계도하려고 했던 걸까.

막상 아주머니는 나를 잡고 나니 뛰어올 때 화를 냈던 것과 달리 나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왜 그랬노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데이.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알겠나?'. 하셨던 것 같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야 이놈의 문디 가시나야. 니 혼 좀 나야겠네. 몇 학년 몇 반이고? 니 물건 훔치면 경찰서 가는 거 아나 모르나?!'라고 하셨던가.


쫓아오던 모습은 선명하지만 지우개로 빡빡 지운 듯 이상하게 그 부분만은 희미하다.

어쨌든 나는 경찰서나 감옥에 가진 않았고, 안타깝게도 그 아주머니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셨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니까.



그때 나는 상황을 모면 코저 울면서 두 손 모아 빌면서 잘못했다고 말했다. 나의 가장 큰 무기인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눈물을 이용해서 동정심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생각하고 뉘우쳐서는 아니었다. 그저 경찰서나 감옥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그 못된 버릇으로 무엇을 했냐 하면, 장사를 끝내고 돌아와 벽걸이에 걸어둔 큰 이모의 옷 주머니를 뒤져서 용돈 벌이를 했고 작은 이모의 크리스털로 된 예쁜 열쇠고리를 몽땅 내 비밀의 장소로 옮겨놨으며 고모집에서 본 나무 목걸이를 몰래 가방에 넣었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되려고, 대체 어떤 삶을 살려고, 그 어린 나이부터 그리 영악한 짓을 했단 말인가. 나의 떡잎은 아주 샛노래서 결국 햇빛의 저주 속에 말라가리라 예상되는 것이었을까. 암담한 미래만이 그 아이의 것이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게 옳은 것일까.


나도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왜 부모님에게 연필 세 자루를 사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왜 다정한 이모와 고모에게 크리스털 열쇠고리가 마음에 드니 하나 고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반짝이는 나무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냐고.


아니, 그러지 말자.

어린아이에게 왜라고 묻다니 너무 잔인하다.

옳지, 가엾은 아이야 대답하지 말거라.

지금의 내가 너를 위해 항변하리라.


여러분 사실 이 아이는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생각보다 떡잎이 그리 노랗지도 않고요. 얘는요 그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을 뿐이에요. 훔치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웠거든요. 이 아이 부모님 삶이 아주 벅찼기 때문에 아이는 요구하지 않는 착한 딸이 되어야 했어요. 키워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했죠. 요청하고 부탁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자신의 욕구를 감추고 만족하는 척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 했어요. 버림받지 않으려면요.


여러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시겠어요?

아, 아이야 그랬구나. 그게 너무 갖고 싶었구나. 하지만 너는 그것을 말하기가 두려웠구나. 부모님은 이미 괴롭고 벅찬 인생을 살고 계셨기에 그것을 얻을 다른 방법은 없었구나. 그거 아니? 나는 네게서 나는 그 냄새가 좋아. 괜히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든.


내가 고향이 부산이 아닌 통영이라 말하는 까닭은 그곳에서의 기억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부모님과 우리 남매는 엄마의 고향인 통영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가 살게 된 곳은 수산 공장 위에 있는 가정집이었는데 한쪽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넘실대는 바다가 보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망산 공원의 끝자락에 놓인 낮은 건물들과 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머리가 크기 전 몇 년 동안 남망산을 놀이터 삼아 내내 뛰어다녔다.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난했으나 낭만이 있었다. 내가 상상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배경이 넓고 아름다워졌다. 그것이 나를 치유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관적인 도벽에서 구출되었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남망산에 오르면 보이는 항구의 모습과 통영의 바닷소리, 그리고 그 향내음 때문이리라.


운이 좋아 전 세대보다 지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의 욕구는 아주 소중하고 당연한 거야. 현실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또 그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 하지만 믿어주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돌볼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해줘. 사랑한다. 내 딸아. 세상의 모든 모래알 개수만큼!'


햇볕이 아주 무더웠다. 유모차 앞뒤로 아이 둘을 태우고 문구점에 갔다.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스티커도 갖고 싶다고 했다. 스티커는 두 개만 사기로 했다. 아이는 고심해서 스티커를 골랐다. 신이 난 아이가 방방 뛰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가계부


지출

색연필: 7,800

스티커 2개: 2,000

스케치북 2개: 2,000

아이는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춤추는 발레리나 소녀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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