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딱 니 학원비 낼 때가 되면 돈이 생겼다."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한 번도 좋은 남편 인적 없던 아빠는 끝까지 그랬다. 그 시절 아빠는 사랑을 쫓아 떠났다. 그 빈자리는 지독한 가난과 누추한 집, 수치와 자기 연민이 채웠고 엄마는 두 아이들과 살아보려고 나쁜 짓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남겨진 가족들이 살던 월세집에는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하나 있었고 신발을 벗는 현관이 목욕실이 되고 싱크대도 되고, 세탁실도 되었다. 다행히 좋은 이웃들을 만났지만, 서로의 가장 슬픈 민낯을 들킬 수밖에 없었기에 남몰래 서로를 조소했다. 그러면 잠시 좀 더 우아한 세계의 사는 것 같은 착각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댁은 한때 좋아했던 초등학교 동창 아이의 할머니셨는데 나는 어느 날 문을 열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 친구를 만나고 그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렇게 가난할 때 나는 철도 없이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3년이나 다녔는데, 엄마는 돈이 없으니 학원을 그만 다녀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당신보다는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녀를 교육하셨다.
일본어 학원에 가는것은 물려받은 교복이 볼품없이 크고 색 바래 새 교복 갖는 것이 소원인 가난한 아이가 유일하게 누리는 사치였다. 그리가난한 시절이 아니었는데 우리 집은 유독 그랬다
그 덕분일 것이다. 지금의 나의 삶은.
제 몸 바쳐 아이를 키워낸 엄마의 외롭고 서러운 헌신 덕분이다. 그것이 나를 지금으로 살게 한 것이다.
어느새 나는 젊은 시절의엄마가 그랬듯이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의 엄마가 새벽부터 밤까지 거친 바다에 온 육체를 던져 생계를 유지할 때, 나는 따뜻하고 시원하고 밝고 안전하고 예상 가능하고 깨끗한 곳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엄마가 시골 후미진 곳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에서 아이들을 키웠다면 나는 엘리베이터와 놀이터가 있는 깨끗한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공부했지만, 내 아이는 그저 누리고 그저 빛나고 그저 충만하기 위해 춤추고 표정을 짓고 색을 고르고 그림을 그리기를 바란다.
아이는 매일매일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자유롭게 실패하며 자기 속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깔대로 살 용기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