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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Feb 24. 2023

너 지금 시집살이하는 거야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biting'

나의 애인은 나의 부모님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한 번으로도 충분히 신기한 경험이었겠지만, 한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한국에 잠깐 여행 왔을 때 등을 다 합치면 적어도 다섯 번은 된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우리  집은 손님을 받을 정도로 크진 않다. 보통의 32평 아파트. 화장실 두 개, 거실이 중앙에 있고 방은 총 세 개. 부모님과 나, 세 식구만으로도 복닥 복닥하게 살아야 하는 공간이다.


처음은 하룻밤 신세 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시 종로구의 작은 원룸에 머물던 애인은 작고 깔끔하지만 외벽과 마주한 그 집에서 자주 추워하곤 했다. 원래 살던 영국과 달리 한국의 겨울은 굉장히 건조하며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잦았다. 하루는 문자가 왔다.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났어”. 지난밤 영하의 기온은 보일러를 꽁꽁 열러 버리기에 충분했고, 딱히 누구도 귀띔해 준 적 없기에 애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2020년 새해를 딱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 각각에게 (우리 집은 단체방은 굉장히 유난히 폭파되는 일이 잦았다) 보냈다. “내 애인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보일러가 고장 났대. 방이 너무 추워서 고생할까 봐. 오늘 딱 하루면 돼". 그렇게 애인은 처음으로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퀴어인 나와 애인은 5년째 연애 중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부모님과 한 집에서 신세를 진다는 설정 자체가 가능한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미처 다 다루지 못할, 아주 험난한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나의 커밍아웃과 애인을 처음 소개했던 과정은 기회가 된다면 풀도록 하고, 어찌어찌해서 나의 애인은 부모님과 식사도 하고, 같이 카페에 가며 신뢰를 쌓은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잠시 고민하던 부모님은 생각보다 의연하게 허락하셨다. 그날 다 같이 저녁 먹고, 새해 타종을 티비로 보고, 다음날 아침에는 무려 떡국까지 끓여 먹으며 애인이 집에 머무르는 행사가 잘 마무리되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우리는 본격적으로 장거리 연애에 돌입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다녔고, 그는 일 년 간 일본에 살며 어학당을 다녔다. 비행기를 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우리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일본 혹은 한국에서 만났고, 애인이 한국에 올 때면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내 애인은 우리 집 방문마다 매번 신중했다. ”부모님한테 괜찮은 지 꼭 물어봐야 해. “ 라며 엄포를 놓았고, 한국에 올 때마다 크지도 않은 백팩에 과자나 술 같은 선물을 잔뜩 사 오곤 했다.


애인의 방문에 진지한 것은 부모님 쪽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입이 하나 더 느는 만큼 엄마는 식재료를 사기에 바빴고 아빠는 청소에 열중하며 조금이라도 더 정리해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애인과 부모님 양쪽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안심시키면서도  (“우리 아빠는 술이면 다 좋아하셔” “집에 반찬 많은데 걱정하지 마" 등등)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활동이나 주제를 분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 번이 두 번, 세 번이 되면서 부모님은 애인의 생활 패턴에 익숙해졌고, 보통 방에만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높이 샀다.


2022년 초, 나의 애인은 팬데믹을 뚫고 한국에서 두 달 정도 머물렀다. 그동안 장거리가 너무 길어지자 내가 고집을 부렸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부모님에게도 걱정으로 다가왔지만, 점차 빨래도 같이 널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같이 요리도 하며 어느새 한 식구가 되어버렸다. 날이 좋은 3월의 어느 하루, 같이 빨래를 널고 있는 애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 지금 시집 살이 하는 거야. 시집살이가 뭔지 알아?” 이내 오는 대답은 절레절레. 얼마 전 토픽 3급에 합격했으며 나보다 K-드라마에 빠삭한 그에게도 시집살이란 생소한 단어였을 테다. “시집은 결혼한 상대의 가족을 말하는 거고, 시집살이는 그 집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거야” 영어로 설명하니 단어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는 이내 시집살이가 좋다고 했다. 서울에서 이런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고. 자기는 나의 부모님이 좋다고. 나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렇게 나와 애인의 동거는 시집살이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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