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iting'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다고, 엄마가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미 일본과 홍콩을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고, 삼촌이 잠시 머물렀던 미국 땅을 밟기도 했다. 14살이 되면 유럽에 데려가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가, 펀드에 넣은 돈이 쪼그라들어 못 가게 되자 두고두고 아쉬워하며 밥 먹을 때마다 얘기하던 아이였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 훨씬 여행에 본격적이었다. 현지 언어를 배운다는 구실로 돈을 모아 유럽에 갈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교환학생을 하던 당시 며칠이라도 휴일이 생기면 인터넷으로 가장 싼 항공권부터 찾아보던 사람, 바로 나. 저가 고속버스인 플릭스 버스(Flixbus)를 타고 불편한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가야 했지만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웬만한 현지인보다 여러 국가를 다녀왔다. '여행은 가기 전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터넷에서 하나둘씩 정보를 모으며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 음식, 그리고 사람들에 한껏 호기심을 품곤 했다. 깜깜한 밤에 길을 잃어도, 파리에서 소매치기당할 뻔해도 마치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시험하듯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다는 감정이 들었다. 대학생 시절, 미국 뉴욕에서 한 달 동안 무급 인턴으로 일한 적도 있다. 퇴근 후 네모 반듯한 맨해튼의 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처음으로 베트남 반미를 맛보고, 스타벅스 트렌타 사이즈를 온종일 마시니 마치 뉴요커 된 것 같았다. 항상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낯선 이방인으로서 사는 삶을 꿈꿔왔다.
2020년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던 시기, 나는 한국에서 마지막 학기를 마쳤고, 애인은 일본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막 영국에 간 참이었다.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 수개월 안에 오겠다는 그의 계획은 팬데믹과 함께 무산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장거리 연애라 힘들겠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나도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괜히 동요되어 “절대 하지 마”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물론 진심이기도 했다. 하필 잠자기 전이면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이 한둘씩 떠올라 울적했다. 같이 가던 식당, 카페, 거리 등을 괜스레 혼자 다니며 사진 찍어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만병통치약. 점차 지나면서 서로 떨어진 상황에 익숙해졌고, 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 빈자리는 친구들과 가족으로 채워나갔다.
그 2년 동안 ‘향후 계획’은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어떻게 하면 빨리 만날 수 있는가. 팬데믹은 점차 길어졌고 수시로 바뀌는 출입국 규제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애인은 한국에 오고 싶어 했고, 나는 그동안 밖에 나가지 못한 답답함이 쌓여 영국에 가고 싶었다. 내가 동성 커플로서 영국이 주는 이점을 얘기하면, 애인은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사람들이 시끄러운지를 열거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던 2022년 1월, 나는 불쑥 메시지를 보냈다. “나 영국 워홀 갈래.”
이 사건의 발단은 영국 워킹 홀리데이(이하 워홀) 비자 신청 공고를 우연히 본 것이었다. 마침 응모 기간이었고 자격이 까다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영국은 코로나에 대한 규제가 거의 풀리는 시점이어서, 내가 가는 것이 애인이 오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보다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을 벗어나 영국에 워홀을 간다는 것 자체에 가슴이 설렜다. 어쩌면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외에서 살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간 시차를 맞춰 한국은 밤, 영국은 아침인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긴 영상통화 내내 수 만 가지의 가능성이 오갔고 마침내 그를 설득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같이 살아보기로.
확신에 차 설득을 했음에도, 사실 워홀 비자를 진짜로 받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필수 서류에는 영어 성적도, 간단한 자기소개란도 없었다. 이름, 여권 번호 등 신상 정보를 동봉해 이메일로 비자 신청을 하면 랜덤으로 대상자를 뽑는 방식이었고, 평소 운이 없기로 소문난 나에게는 큰 가망이 없어 보였다. 믿져야 본전. 그렇게 신청을 하고 몇 주 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비자 대상자가 되었다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고 소리 지를 뻔했다. 퇴근 시간과 겹쳐 열차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평소 밖에서 통화를 잘하지 않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나 영국 워홀에 합격했어.” 수화부 너머에서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해. “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함께하는 삶이 끝없이 펼쳐졌다.
*알아두기: 영국 워홀 대상자로 선발되었다고 바로 비자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후 필수 서류를 다 제출하고 영국 정부에 승인을 받는 오랜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자 신청에 필요한 어느 정도의 금액과 서류가 준비된다면 대부분 문제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