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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Mar 16. 2023

웰컴 투 맨체스터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iting'

두 번의 면접만에 가장 원하던 곳에서 합격 메일을 받았다. 계속되는 면접에 대한 부담감도, 3개월 안에 출국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단번에 사라졌다. 비자가 발급되고 이직 준비가 거의 다 완료되면서 “저 영국 가요”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2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막상 그 말을 꺼내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함께 동고동락했던 지인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너무 축하한다’는 반응부터 이제 못 보는 거냐는 아쉬움까지,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중 가장 재밌었던 말은 “영국에서 결혼하면 꼭 불러줘”. 매일매일 약속이 있었고 사람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는 항상 '떡볶이‘로 답했다. 외국에 가면 절대 같은 맛을 찾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출국 하루 전이자 출근 마지막 날. 우리 회사의 오랜 전통에 맞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퇴근하였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볼 때마다 그동안 일했던 시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기며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영국에 꼭 놀러 와야 해”,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못 보는 시간 동안 우리 모두가 부디 무사하길, 또 건강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2022년 6월 8일,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코로나 이후 첫 비행이었고 비행기 안에서부터 거리 두기와 마스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에서는 이제 마스크를 안 쓴다던데 사실이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 낯선 상황에서 나를 지켜줄 것 같은 KF94 마스크를 절대 벗을 수 없었다. 서울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스탄불을 경유에 맨체스터 국제공항까지 약 17시간 비행 일정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 먹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나지만, 2년 만의 비행이라서 그런가 괜스레 걱정이 앞섰다. 한참 유럽이 락다운을 시행했던 시절, 나의 친한 지인은 비행기가 텅텅 비어 소위 ‘눕코노미(이코노미 좌석이지만 빈자리가 많아 누워서 갈 수 있다는 의미)’를 했다는데 나에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체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부류의 행운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혹시 비행기 얼마에 끊으셨어요?” 옆을 돌아보니 중년의 한국인 부부가 앉아 있었다. 서로 마스크를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 모습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비행기값이 많이 올랐더라고요. 저는 편도 100만 원 정도 줬어요.” 굳이 왜 물어볼까 싶으면서도 솔직히 대답했다. “어디로 가는데요?” “저 영국으로 일하러 갑니다.” “아, 그 정도면 괜찮은데? 저희는 이스탄불 여행 가는데 왕복 200은 넘게 줬어요. 영국까지 가는데 그 정도면 괜찮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스탄불에 한 번도 안 가봤다며,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그들은 이번이 2번째라며 굉장히 좋은 여행지라고 추천하였다. 비행기 속의 대화가 무언가 이질적이면서도 괜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이들도 오랜만의 비행에 설레면서도 무언가 위안을 얻고 싶은 것 아닐까? 혼자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기내에서 마주친 어른들이 해주었던 대견하다는 말이 문득 머릿속에 스쳤다.


20대 후반으로 가면서 내 몸이 변화하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게 된다. 그 사이 체력이 많이 약해진 탓인지 한두 시간이 지나자 점차 자리가 불편하게 느꼈다. 평소 같으면 비행기 이륙에 맞춰 잠이 드는 나이지만 왜인지 금세 깨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가장 기대했던 비건 기내식 (탑승 며칠 전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했다)은 나의 예상과 달리 항상 가장 늦게 나와서, 기내에 퍼지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배가 고파오지만 오매불망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식사도, 영화 감상도, 잠도 하는 둥 마는 둥 애매한 시간이 지나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그 규모가 워낙 크기로 유명한데, 예전 베네치아 - 서울 구간 비행에서 스탑 오버를 했다가 30분 전력질주를 해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한 시간 반을 이번에는 조금 알차게 써보자는 심산이었다.


내가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대략 새벽 5시였는데, 한산한 게이트를 지나 식당 및 상점가로 들어서자 정말 많은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펍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 기념품점에서 터키풍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의자가 안 보이자 길바닥에 퍼뜩 앉아 휴식을 청하는 배낭여행자들까지. 정말 유럽 쪽 여행 규제가 많이 풀린 것이 실감 났다. ‘터키 아이스크림을 현지에서 먹어야지’라는 나의 계획은 마땅한 가게가 보이지 않자 쉽게 무산되었고 그나마 가게 몇 군데를 살펴본 끝에 피스타치오 맛 터키쉬 딜라이트를 한 상자를 가장 저렴한 곳에서 살 수 있었다.


영국으로 향하는 게이트는 공항의 상당히 안쪽에 있었다. 조금 놀란 것은 그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해 별도의 여권 검사와 짐 검사가 따로 필요하다는 점. 사실은 더 돌아다닐 계획이었으나 몸이 지쳐 게이트로 빨리 향한 것뿐이었는데, 자칫 오래 기다릴 뻔하였다. 조금 삼엄한 분위기 속에 줄을 선 나는 그곳에 먼저 와 기다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국인 혹은 백인은 그곳에 한 명이나 있었을까? 다양한 출신 국가, 피부색, 언어가 그곳에 혼재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며 ‘외국인’ 그리고 ‘동양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에 굉장히 민감해져 왔다. 길을 가다 보면 이유 없이 질문을 받거나 주문할 때 없는 사람 취급받기도 했고 실상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범죄가 증가한다는 소식을 자주 접했기에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영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정말 다양하고 일부는 인종에 상관없이 영국 국적을 지니고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에 조금 충격을 받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쫄지 말자.”


다시 한번 5시간 비행을 거쳐 마침내 맨체스터 공항에 막 도착한 순간이 생생하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빨리 짐을 찾아서 애인을 만나고 싶었다. 출입국 심사관은 비자에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고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를 물었다. 의욕은 앞서지만 떨리는 마음 때문에 짧은 대답이 나왔다. “웰컴 투 맨체스터.” 어두웠던 심사관의 얼굴은 일순간 밝아지면서 나에게 말했다. ‘휴, 됐다’라는 안도감이 앞섰지만, 가까스로 ‘땡큐’를 말하고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요즘 공항에 인력은 부족한데 인파가 몰려 짐이 자주 사라진다는 소문이 흉흉했지만, 나의 23kg짜리 두 캐리어는 무사히 그리고 비교적 빠르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 짐 찾았어. 이제 밖에 나올 거야.” 나의 상황을 묻는 애인에게 빠르게 답장했다. 마음이 앞서 헐레벌떡 밖으로 나왔을 때 애인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눈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감정을 숨기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잘 지냈어? “ 일상적인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그를 따라 공항 밖으로 나서자 제법 쌀쌀한 바람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6월 초인데 역시나 영국은 추웠다.


p.s. 퇴사 선물로 받은 참기름 아직도 잘 먹고 있습니다. 애인이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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