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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Mar 09. 2023

왜 맨체스터에 오고 싶냐면요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하는 ‘Co-habiting'

영국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대상자에 합격한 이후, 본격적인 이주 준비가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신청 기준은 “이게 전부?” 싶을 정도로 까다롭지 않은 데에 비해, 막상 선발된 이후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서류와 시간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선정 대상 메일을 받고 한 달 이내에 나의 신상 정보, 가족, 거주 형태, 직업, 여권상 출입국 정보 등을 세세하게 적어 신청서(Application)를 홈페이지에 제출해야 한다. 한 시간이면 될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라인 링크를 눌렀다가 끝나지 않는 페이지가 기겁하며 중도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중간 저장 버튼이 있다. 실수할까 봐 확인하느라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찾아놓고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시길. 필요한 서류는 대략적으로 여권 (만료된 여권 포함. 지금까지 여행 다닌 모든 장소에 대해 목적지와 기간을 물어본다)과 최근 5년 이상의 거주 기록, 은행 정보 등이다.


이때, 우리나라로 따지면 주민등록증 격인 BRP(Biometric Residence Permit) 카드의 수령 장소도 미리 정해야 한다. 영국 주소를 입력하면 근처에 수령 가능한 장소를 알려주는 식. 외국인의 경우 여권 대신 영국 내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최초 입국 후 2주 내에 반드시 수령해야 한다. 이 카드가 있어야 비자 기간 내에 출국해도 다시 영국에 입국할 수 있기에 여행을 가기 전 꼭 참고하자. 당시 직장 위치와 거주지가 정해지지 않은 나는 당장 어느 도시에서 살지조차 몰랐다. 고민 끝에 안전한 선택지인 애인의 부모님 집 주소를 써넣었다. 스킵튼(Skipton)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수령 장소가 없어 근처 다른 마을인 넬슨(Nelson) 우체국을 목록에서 선택했다. 런던, 맨체스터 등 대도시의 경우 옵션이 훨씬 다양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청서 작성의 마지막 단계는 결제. 비자 수수료 및 무려 2년 치에 해당하는 국가건강보험료(National Health Service)를 일시불로 결제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대략 200만 원. 큰 금액인 것은 맞지만 내가 한국에서 지불하는 국가 건보료를 따졌을 때 또 크게 다르진 않았다. 비자 센터 방문해 서류를 제출하기 전 취소하면 환불된다는 조건도 있지만, 막상 그렇게 큰돈을 결제하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든 내용이 맞는지 몇 번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결제. 나중에 확인하니 보험료를 내면 영국은 의료 비용이 무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된 영국에서도 이례적이지만, 막상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과연 한 번이라도 쓸 일이 있을까.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비자센터 방문 준비가 시작되었다. 지정된 병원(서울의 신촌과 강남에만 있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문제없다는 검사서를 제출해야 하며, 검사 예약과 검사서 수령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인 건강 검진과 유사하지만 패렴 검사가 중요해서 혹여나 위험성이 감지된다면 심층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영국에서 초기 정착을 하기 충분한 금액의 통장 잔액을 증빙해야 한다. 그리고 신청서 제출 후 3개월 안에는 이 모든 과정이 반. 드. 시. 완료되어야 한다.


이렇게 비자 준비가 한창인 와중에 나에게는 또 다른 큰 산이 존재했으니, 바로 이직.


나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큰 규모의 회사이고 웬만한 국가에는 다 있는 덕분에 종종 한국에서 해외로 가거나, 해외에서 한국으로 이동오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그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꼭 해외로 가야지”,라는 생각을 입사 때부터 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국으로 훌쩍 떠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회사에 다녔던 덕분이다. 준비를 시작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신청만 하면 돼?”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간단할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 여정은 험난했으니...


처음 지원하는 기분으로 영국 사내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고를 보았다. 기준은 두 가지. 같은 역할일 것. 북부에 있는 도시일 것. 더 높은 직급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기간 내에 안전하게 면접을 통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북부 도시를 고른 이유는 물가의 영향이었다. 대도시의 재밌는 전시, 개성 넘치는 상점 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런던에 사는 나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만, 이미 애인이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경고한 바 있었고 월세에 200만 원씩 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고른 도시가 애인의 고향 근처에 위치한 리즈 (Leeds), 맨체스터 (Manchester), 리버풀 (Liverpool), 그리고 좀 더 북쪽의 뉴캐슬 (New Castle), 에든버러 (Edinburugh).


“왜 맨체스터에 오고 싶어요? “ 밤 11시에 참여한 회상면접에서 해당 질문을 받았을 때 잠깐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솔직한 대답이 이어졌다. “애인이 스킵튼에 살고 있어요. 코로나 여파로 2년 동안 못 만났는데 마침내 제가 영국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 근처에 맨체스터가 가장 큰 도시이고 공항도 잘 되어 있어서 옮기기 수월할 것 같았어요.” 만약 한국에서의 면접이었다면 더 폼나는 이유가 있어야 했을 텐데. 나는 사전에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내가 무슨 업무를 했었는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잔뜩 준비했었다. 그런데 막상 면접에서는 내가 오늘 무슨 하루를 보냈는지, 요즘 어떤 것을 가장 즐기는지, 우리 회사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가고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12시 정각이 면접이 끝나자 그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 새로운 국가에서 외국어로 일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한층 옅어졌다.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이런 분위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정을 넘긴 시간, 나 홀로 고된 하루가 끝나고 기분 좋은 날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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