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께. 우리의 밤, 수다 그리고 벗
“오랜만에 Y를 만나기로 했어요.”
인터뷰가 있어 회사에 잠깐 들른 M은 살짝 미소 지으며 수줍게 말했다.
“오 너희 화해한 거니? 아니 애초에 싸운 건 아니었나? 아무튼 좋겠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서.”
짐짓 아는 척하며 말을 건넸지만, 사실 M과 Y의 관계를 소상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서 본 이들은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어느 순간 멀어졌고, 둘 사이 꽤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뇨 딱히 싸운 것은 아니지만, 복잡 미묘한 이야기가 쌓였던 것 같아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M은 답하며,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서 씁쓸한 감정이 묻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 그럼 오랜만에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수다하겠구나.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맛집 가서 즐거운 시간 가져.”
“그럼 좋을 텐데. Y가 일이 있다 해서 잠깐 차나 한 잔 마시려고요.”
M은 인터뷰 후, Y를 만나러 황급히 회사를 나섰다. Y를 만나러 가는 길, M이 내게 카톡을 보냈다.
M) 어제 꿈에 Y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을 했는데, Y도 제 연락을 기쁘게 받아 줬어요. 서로 마음을 느끼니 너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바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행복, 웃음 가득 이모티콘)
글금태) 잘했어. 먼저 손을 내미는데 인색하게 굴 필요는 없으니까.
M) 다행이다. 지금 서로 심장 터져하고 있어요, 잘 만나고 올게요!
소원해진 사이에 먼저 연락을 하고, 그 연락을 흔쾌히 받아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얼마나 가슴이 설렐까. 그 두근거리는 마음이 이해가 되자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어떤 이유로든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친구의 연락을 받는 것 또한 몹시 망설여지는 일일 것이다. 지지부진한 관계의 단절 속, M은 용기를 내 마음의 손을 내밀었고 Y는 어색한 표정 지으며 그 손을 잡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둘 사이 있었던 긴 침묵은 문제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옅어진 관계가 만든 각자의 이야기는 곧 다시 하나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오랜만에 만난 둘이 어색한 얼굴로 첫인사를 나누는 풍경이 상상됐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낄낄 거리며 수다를 떠는 그림도 떠올랐다. 이들의 오랜만에 만남이 카톡 속 대화처럼 심장 터질 것 같은 만남이길 하는 바람이 생겼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길버트 오설리반(Gilbert O'Sullivan)의 <Alone Again(Naturally)> 노래가 떠올랐다. 곡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현실 속 갑자기 닥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화자의 마음,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과거 떠나보낸 사람들을 떠올리며 결국 다시 혼자가 된 자신을 돌아보는 노랫말이다.
1972년 발표 후, 빌보드 차트 1위에 6주간 머물렀던 곡으로 밝은 멜로디와는 달리 다소 쓸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일상 속 수많은 관계에 부딪혀 기뻐하고 슬퍼하며, 웃고 싸우며 만나고 이별한다.
그 관계가 끝나, 돌아본 우리의 이야기는 대부분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줬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끝난 사이는 그냥 끝난 사이가 될 뿐. 우린 결국 다시 혼자서 만들어낸 감정의 파고 속, 관계의 덧없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침묵 속에 가둬 버린다.
하지만 만남과 이별, 이 뫼비우스 띠와 같은 네버 엔딩 스토리에서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관계의 끈을 이어가며, 나의 오늘을 함께 나누고 싶은 작은 바람이다.
우리의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길버트의 노래처럼 혼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다시 혼자가 되었음에 힘껏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침묵을 깨는 손을 먼저 내미는 용기를 가졌음 한다.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기에.
M) 같이 집에서 오랜만에 맥주 마시고 있어요.
늦은 밤, 마치 오늘 만남의 경과보고를 하듯 M에게 카톡이 왔다.
M과 Y가 다시 함께 하는 이 밤이, 지난 시간을 건너 오늘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비록 다시 혼자가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