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인물 X,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지만 정말 쉽지가 않다.
X는 우리 팀에서 일하는 나보다 12살 어린 디자이너이다. 그는 나의 20대 시절과 사뭇 다른 가치관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 24살, 그 꽃 같은 나이에 결혼을 이미 하고 애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우스빌둥(Ausbildung: 독일의 직업교육)을 통해 그래픽 디자이너가 된 후 벌써 3년이라는 경력을 쌓았으면서도 직장 생활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해서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높으신 분들에게는 중요한 인물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기회주의적인 성향까지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한 팀이라는 점이었다.
X는 회사를 위해 해야 하는 일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만 하려고 꼼수를 쓰기 일쑤였다. 원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을 대부분 무시하곤 했다. 그렇다고 디자인에 재능이 없느냐? 그게 아니어서 더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수많은 재능 있는 동료들이 자의든 타의든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보았다. 그만큼 현직 디자이너로 은퇴할 때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정말 극 소수이다. 대부분의 산업군이 그럴 테지만 사실 능력이 특출 나서 살아남는다기보다 살아남았기에 승자가 되는 것이다. 길고 가늘게라도 살아남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의 지위가 되면 더 이상 잔기술로 승부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 그렇기에 잘 나갈수록 사실 겸손함을 지키며 그동안 쌓아온 지식, 지혜와 경험으로 팀원들과 함께 성장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에 그 실력의 나라면 지금에 상황에 안주하기보다 더 큰 미래를 그리려고 노력할 텐데 X는 그저 돈벌이를 위해 회사 다닌다는 걸 팍팍 티를 냈다. 특히 긴급한 프로젝트가 있어도 4시 땡 하면 용수철처럼 일어나 집으로 가 버려서 팀장과 내가 당황한 나머지 서로 눈만 꿈뻑꿈뻑 쳐다보고 있던 적도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에 소극적인 그이기에 하루에 우리가 팀원으로 나누는 대화의 양도 매우 적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나누고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으면 바로 건너편으로 건너와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이메일을 쓰곤 했다. 팀 동료로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알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팀워크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여서 사실 많이 거슬리긴 했지만 내가 팀장도 아니고 같은 직장 직원으로 조언을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그 아이에 대한 소문 아닌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의견이 다르다고 다른 팀 직원 책상에 서류를 던지고 나왔다고도 하고 어느 누구를 면전에서 무시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으며 간단한 일도 시간이 없다며 미루고 미뤄서 2-3주가 걸렸다는 이야기며 여하튼 많은 회사 직원들이 그의 등 뒤에서 험담을 했다. 나를 포함한 여러 직원들이 팀장에게 그에 대한 언질을 줬고 팀장이 그를 따로 불러 타일러 보기도 여러 번, 그러나 그 순간에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말뿐 큰 변화는 없었다.
내가 느낀 그는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은 없는데 공감지수 또한 부족한 사람. 이중적인 행동을 자주 하고 거짓말에도 별다른 죄책감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대범한 척 굴고 대화 도중에 눈 마주치기도 어려운 친해지기 까다로운 스타일.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출근길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던 그때, 우린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내 인사에 한 마디 대꾸를 안 하는 그 아이를 보며 사회성에 정말 문제가 많은 친구라고 느꼈다.
그 날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장은 중립적이었다. 마음에는 당연히 안 들지만 어차피 일 하기 위해 만난 관계라는 결론을 이미 내렸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없다면 내가 어차피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인간적인 호감이 안 드는 사람에게 마음을 특별히 나눠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살갑게 굴지도 않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나쁘게 굴지도 않았기에 굳이 욕을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도 있었다. 출장으로 가게 된 박람회에서 시간 날 때마다 자기 부인한테 전화하고 다정히 챙기길래 완전 싸가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러나 팀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확실히 문제이기에 미래에 비슷한 능력의 새로운 디자이너가 온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일이 드디어 터졌다.
팀장이 1주일의 휴가를 떠났던 그 시기, 하루 일과의 절반을 인터넷 쇼핑과 Whats App(이곳에서의 카카오톡) 채팅으로 보낸 것이다. 그 아이는 다른 회사 동료들을 장님 내지는 바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직원이 당연히 그걸 모두 지켜보았고 그 직원은 X를 개인적으로 불러 회사 방침 상 그러면 안된다고 직장 선배로써 조언을 했다. 그러나 X는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한다. 게다가 그는 벌써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대범하게도 근무 시간 내에 다른 회사 일자리를 회사 컴퓨터로 찾아보다가 그것을 다른 직원이 보고 또 팀장에게 알렸던 것이다. 야심만만한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Ausbildung으로 시작해 겨우 걸음마를 뗀 3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가 큰 프로젝트의 디자인 디렉터를 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일이 없다. X는 뭔가 본인에 대해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는 듯했다. 팀장은 그 때문에 크게 고민했던 거 같다. 자기가 최악의 팀장이라고 자책하는 말도 들었다. 사실 그가 조금 답답했지만 이해되는 면도 있었다. 독일에서 정직원을 해고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X가 일을 잘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가 당장 일을 그만두면 당연히 우리 팀 전체가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독일은 사람을 뽑는 일도 하루아침에 뚝딱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적어도 2달에서 3달 넘게 걸릴 게 분명하다.
지금 회사 내는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로 의견이 분분한 거 같은데 정작 X만 이런 사실에 대해 눈치를 못 채고 있는 듯하다. 하긴 회사 내 그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 그가 본인에 대한 소문을 그 누구에게 들을 수 있을까?
이건 그의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까? 소위 말하는 세대 차이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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