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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mit Jul 15. 2019

#8 독일에서 산다는 건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때는 2000년 고등학교 여름방학 시즌. 우리 가족은 12박 13일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중 런던에 있는 디자인 박물관에서의 경험은 나를 결국 디자이너의 길로 이끌 만큼 강렬했고 그때부터였을까 유럽에서 공부하고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좀처럼 그 기회는 빨리 와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담도 컸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제일 컸다. 유학을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후 10년 가까운 시간이 또다시 흐르고 난 지금,  감사하게도 독일에 대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보던 그때랑 비교한다면 그때와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거 같다. 부정적이 되었다기보다는 독일 생활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하는 게 나을 듯하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겪어 보는 것에는 어쨌든 큰 간극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고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삶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선 독일에서 사는 것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 보라면 나 답게 살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단, 독일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이 하는 잔소리는 열외로 한다.) 여기서도 보편적으로 그래야 한다라는 관습의 테두리는 있지만 위법 행위가 아닌 이상 남이 뭘 하는지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근데 나름 모든 것들에 있어 정해진 법이 있다는 건 함정) 예를 들어 나는 독일에 온 이후로 회사 생활을 포함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맨 얼굴로 생활한다. 그래도 예전 한국 회사에서처럼 사장님이 대놓고 나서서 화장 좀 하고 다니지 그래?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모를 꾸미는 일은 독일에서 사는 나에게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나답게 지낼 수 있는 건 가족이라는 사생활의 테두리에 들어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는 건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겪은 바는 그렇다. 남편은 저녁에 차가운 버터 바른 빵에 햄, 치즈를 끼워 먹는 것을 즐기는데 반해 나는 한국인이라 따뜻한 밥에 김치랑 고기반찬을 먹어야 힘이 난다. 김치 냄새를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그이지만 김치 먹은 후 그에게 뽀뽀만 하지 않는 한 내 음식 취향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댁에 1년 정도 들어가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2층에 살고 시부모님은 1층에 거주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젊은 우리가 퇴직자이신 그분들에 비해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이해하셨고 우리의 시간을 같이 나눠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상의하곤 하셨다. 한 예로 그분들은 우리와 뭔가 할 말이 있으면 적어도 하루 전에 언질을 주셔서 우리의 스케줄을 배려하셨고 같이 보내는 시간도 커피 마시는 시간 포함해서 세 시간을 넘기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일과 삶의 발란스 부분도 독일에서 사는 장점에 속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디자이너란 직업은 으레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일로 여겼는데 독일도 급할 때는 야근을 하기는 하나 나중에 휴가랑 바꿔서 쓸 수도 있고 팀장님께서 평소에 친히 오후 5시 칼퇴를  몸소 실행해주시니 어찌 아니 감사한지.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게 시간을 조절하는 일이 힘들지 않고 미리 이메일로 아프다고 써서 보내면 진단서 없이 이틀 동안 회사에 안 나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그냥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 단점도 존재한다.


날씨는 나에게 독일 생활의 어려움 중 하나이다. 여름을 제외한 늘 우중충한 날씨는 내 기분을 자주 오락가락 하게 한다. 만성피로 상태로 계속 지내는 기분이랄까? 몸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바로 시작되는 두통은 보너스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두통 차(Kopf-Entspannugs-Tee)가 늘 상비되어 있다. 가뜩이나 저혈압에 가까운 체질이기에 초콜릿과 커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독일에 살면서 다이어트를 포기한 지 꽤 오래되었다. (핑곗거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독일 사람들과 나의 감정선이 다른 것도 독일에서의 삶을 어렵게 느끼게 끔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강해 보이는 외면을 가진 그들이지만 부끄러움과 겁도 많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러서 한국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 편을 들기보다는 중립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면도 많고 속내를 잘 털어놓지도 않아서 1년 동안 가까이 지냈음에도 이들과 내가 친해지기는 하는 건가?라는 기분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힘들 게 친해져도 자주 연락하고 그러지 않는 것이 나를 섭섭하게 했다. 


 늘 배워야 하는 언어와 문화, 사람들과의 부족한 공감대도 어떤 면에서 나는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근방에 동양인이 많지 않기에 길거리를 지날 때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시선도, 가끔 벌어지는 칭챙총 스타일의 인종차별도 독일에서 살지 않았으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도 무시할 수는 없다. 크고 작은 가족들의 이벤트에 오직 카톡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가끔 슬퍼지게 한다.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외할머니 덕에 집안에 큰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하는 걱정은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인 먹거리 부분도 다 여기 살기에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비록 많이 먹지 못하지만 나는 정말 먹는 것을 사랑하는데 내가 사는 이 동네는 어찌 된 것이 이렇게도 먹는 것에 박한 지 모르겠다. 삼시 세끼 맛난 거를 늘 챙겨 먹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먹는 거 먹을 만은 해야 않겠느냔 말이다. 내 돈 내고 사 먹는 레스토랑 음식들인데 너무 짜거나 맛없어서 기분이 상한 적도 많다. 이 문제는 나중에 큰 도시에 가서 살면 좀 나으려나. 


독일에는 서비스 사막(Servicewüste)이라는 말이 말이 있다. 그만큼 소비자로서 서비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새로 이사 간 집에 전구에 불이 안 들어와서 새 전구를 갈아 끼웠는데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수리 센터에 전화했더니 일정이 다 찼다면서 두 달을 기다리라고 했다. 각기 다른 5개의 수리센터에 전화했는데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겨우 약속을 잡고 두 달을 기다렸는데 기술자가 집 안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이렇게 허무한 일이 있을 수가.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사회구조와 제도, 사생활 존중 부분은 독일 승!

문화, 감정, 음식, 서비스 부분은 한국 승!




이래나 저래나 지금 당장 주어진 환경을 내 힘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그저 오늘도 내 마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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