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는 가치관이 될 수 없다.
지금은 끈질긴 그림자 같은 잔재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지만, 이상야릇한 완벽주의란 채찍을 스스로에게 들이민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 점들 투성이다. 무슨 위인처럼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길 생각도 아닌데 무엇이든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해내야만 한다는 근거 없는 강박은 제법 오랜 시간 나의 머릿속 사고 회로에 어떤 백신도 없앨 수 없는 막강한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있었다. 내가 지금처럼 글을 꾸준히 업로드하려는 노력도 완벽주의라는 지독한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않았다면, 있을지도 불확실한 평행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그쳤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속칭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목표는 하늘같이 높은데 비해 '시작'의 발돋움조차 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부류에 나도 모르는 사이 속하지 않았나 싶다.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완벽하게 해내야 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조용히 멀어지기 시작해 어느새 까마득한 거리까지 잽싸게 도망가버린 출발선이 눈에 아른거린 적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완벽주의의 이점은 정말로 원대하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만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의 생각과 행동은 '본인이 원하는 수준까지는' 완벽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완벽해질 필요가 없는' 일까지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어느 한 부분이 완벽하더라도 반드시 다른 부분은 완벽하지 못한, 불완전하고 찝찝한 상태로 남도록 되어 있다. 완벽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정말로 극소수고, 완벽한 상태를 평생 유지할 수도 없다. 당장에 바디프로필만 보더라도 찰나의 완벽함을 사진으로 담아내지만, 사진 속의 모습을 평생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완벽함의 수준'도 사람의 욕구와 희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인터넷에서 결혼하기 앞서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다고 성토하는 익명의 게시글은, 금세 무너질 모래성 같은 완벽주의의 허상에 아주 단단히 붙잡혀있는 셈이다.
완벽주의는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아니라, 찰나의 태도에 그쳐야 한다. 도대체 완벽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다고 출발선조차 넘지 못한단 말인가? 완벽해 보이는 계획을 세운다 한들 시작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처럼 언젠간 완전히 폐기될 것이다. 설령 내가 목적지를 향한 항해의 여정을 완벽하게 준비했어도, 세상에는 한순간에 배를 뒤집어 난파시킬 격랑들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준비하지 못한 게 많아 시작하는 게 두렵다면, 완벽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스스로에게 되뇌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