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돈쓰기를 위하여
요즘 내 집 마련 목표가 생기며 돈을 모으고 가계부를 쓰며 소비습관을 다잡아가고 있다.
결혼 3년 차에 접어들자 엄청난 위기감이 찾아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부모님 덕분에 분에 넘치는 집에서 분에 넘치게 편하게 살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내 인생에는 독이 되고 있었다. 아이는 커가고 이대로 철없이 살다가는 쫄딱 거지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리 큰돈을 쥐어준 들 내가 이걸 관리할 수 없으면 줄줄 새는 바가지라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N 잡러 가 되기로 마음먹고 ‘수입을 늘리자’는 목표로 1년을 살아보니 더욱 절실히 느꼈다. 내 손으로 번 10만 원 남짓의 돈이 이렇게 귀하다는 걸. 그리고 그 돈을 가치 있게 쓰지 않으면 내 노력까지 줄줄 새는 바가지 속에 쏟아붓는 것이었다. 바가지를 잘 여미기로 했다.
이전에 나는 욜로족이 유행하던 때 20대를 보내며 ‘지금을 즐기자’ 라며 돈을 펑펑 쓰는 욜로족이었다. 사실 욜로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도피와 핑계는 참 달콤했다. 물론 그중에는 가치 있는 것들도 있고, 나름 ‘자기 계발’ 또는 ‘나에게 투자’ 분류에 들어가는 것들도 있긴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정말 안 쓸 아까운 돈 3가지를 기록해본다.
1. 피부과, 성형외과에서 쓴 돈
나는 선천적으로 운 좋게도 피부가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보이는 잡티들을 제거하러 소소히 피부과에 가곤 했다. 몇 개월간은 만족했지만, 결국 평생 할 수는 없는 것이라 몇 번 하다 말았다. 결국 돈을 쓴 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피부과는 뭐 그래도 만족감을 주기라도 했다. 성형외과에서 다이어트 주사를 맞은 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허벅지 지방을 태워준다는 주사를 여러 번 맞았는데, 합치면 20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돈으로 PT를 했으면 차라리 체력이라도 좋아졌을 텐데, 필라테스를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다며 미루고는 주사 몇 방에 몇십만 원씩 쓴 게 정말 정말 아깝다. 심지어 별로 효과도 없었다. (식이조절을 안 해서 그런 듯)
지금은 유튜브를 보고 홈트를 하고, 필요하다면 차라리 헬스장이나 개인 운동을 끊는다.
2. 지하상가에서 쏠쏠히 샀던 옷들
사당역 근처에서 자취를 했을 때 퇴근길에 옷을 하나씩 사곤 했다. 9900원짜리 티셔츠를 사러 들어가서 5~6만 원 옷을 산적도 있다. 필요해서 산 옷이었다면 아깝지 않았겠지만, 신입사원 시절 스트레스를 받아 옷을 하나씩 사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6평짜리 자취방의 옷장은 1~2만 원짜리 옷들로 가득 찼다. 철마다 본가로 택배로 싸 보내곤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입을 수 있는 옷이 없다. 내 스타일에 맞지도 않고, 질도 좋지 않은 옷들을 마구잡이로 샀던 돈만 해도 엄청나다. 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아 보면 싸지 않은 것이다.
이외에도 스트레스성으로 샀던 저렴한 “예쁜 쓰레기”들을 샀던 돈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지금은 나에게 어울릴 만한 옷만 질을 따져서 산다.
3. 종이책
어렸을 적부터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혼자 서점을 가면 마음이 좋아지기도 하고, 막막한 시기에는 책에서 길을 많이 찾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건 좋았지만, 종이책을 너무 많이 산 건 좀 아깝다.
내가 산 종이책의 대부분은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괜히 수집욕이 돋아서 책장에 가득 채워놓고 뿌듯해하는 용도로 썼기에 아깝다. 여러 번 읽고 좋아할 책이라면 놔두는 것도 괜찮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 번 읽고 만다. 결국은 이사할 때마다 중고 서적으로 엄청나게 싸게 팔거나 분리수거가 되어버린다.
사실 지금도 책 수집욕을 버리진 못했는데, 그래서 e북 리더기로 대체한다. 오히려 가벼워서 e북 리더기를 산 이후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기도 해서 이건 좀 제대로 된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20대는 취향 찾기의 과정이 필요하긴 하다. 혼자서 떠난 여행이나, 맛있는 것을 먹었던 것은 사실 아깝지 않다.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배움에 돈을 쓴 것들도 약간은 아까울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실패를 통해 나에게 맞는 배움을 찾는 것이라 괜찮다. 심지어 명품을 사 본 경험조차도 나름 나에겐 특별한 실패이긴 해서 괜찮다. 명품으로 내 가치가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피부과, 저렴한 옷, 종이책을 산 건 정말이지 돈이 너무 아깝다. 차라리 그 시간을 제대로 된 운동을 하나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에 썼다면 어떨까 싶다. 여전히 내 성격상 그 시기에는 돈을 못 모았을 거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스트레스 핑계, 무료함 핑계로 돈으로 무언가를 채우려던 그 자체가 아깝다.
20대의 내 동생에겐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경험과 실패에 돈과 시간을 쓰는 건 아끼지 말라고.
더더욱 그래서 30대의 나에겐 더 자주 이야기한다. 20대의 후회와 아까움을 경험했으니, 30대에는 좀 더 가치 있는 것에 시간과 돈을 써보자고.
여전히 가끔 아까운 돈을 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기록하고, 반성하며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