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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 Nov 22. 2021

이번 연말 모임은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항상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던 내가 이번에는 연말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가끔 나에게는 이렇게 인태기가 오곤 한다. 누구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있고 싶어지는 그런 시기가 온다.


대부분의 경우 인태기는 늦여름~가을 즈음에 오곤 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연말이 오면 또다시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인태 기를 조금 오래 가져보려 한다.



2019년 결혼 후. 빨리 태어난 아가 덕분에 기존의 친구, 직장동료 등의 인간관계는 거의 소멸되었다. 최근에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결혼하고 육아하는 친구들은 유니콘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라고 하는 말이 와닿았다. 그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모임은 참석했고, 내가 만드는 모임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처음에는 괜스레 우울하고 나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 같았다. 물론 코로나라는 상황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원래의 인연’들과 만남을 갖지 못했다. 사람이 고파져서 서둘러 복직 시기도 정했고 복직한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간간히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던 친구들만 2~3달에 한 번씩 만나곤 했다. 그나마 복직 전에는 집에도 놀러 와 주던 친구들이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맞지 않아 거의 만나는 일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경험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가져다주었고, 기존에 나를 알던 사람들에게는 내가 생소해져 갔다. 새로운 관심과 새로운 경험을 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최대한 친구들 앞에서는 육아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얘기를 많이 들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이미 이런 세상으로 와버린 이상 나의 변화된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변했어’라는 말이 아니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없고 가정이 없는 서른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내 생활은 이미 변해버렸고 이것조차도 그냥 내 모습이란 말이다. 이전의 나의 모습을 기준으로 나를 ‘변했다’라고 말하는 그 모든 말들이 너무 불편했다. 그 모임에서 어느 순간 나는 불편한 사람, 눈치 봐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나를 배려했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만의 모임을 갖는걸 부럽게 생각하고  혼자만 우울한  같은 생각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뻔히  보이는 모임을 가지면서 단톡방엔 서로 연락도 남기지 않는  공허한 관계가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이 되었다. 나는 그저 ‘연락’이 필요했던 것뿐인데, 그들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가끔 있는 모임에서 최대한 ‘예전의 나’처럼 보이기 위해 열심히 열정적 인척을 했다.


과연 관계에서 상대방을 위한 배려란 무엇일까

서로 뭔가 불편하지만 ‘배려’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냥 참고 넘어가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서로의 방식을 모른 채로 접시와 호리병을 대접한 여우와 두루미처럼




올해도 역시 연말 모임을 갖자고 연락을 해준 고마운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로 달라져도 괜찮을 줄 알았던 관계는 사실 무언가 불편한 점을 껴안고 끌고 가는 관계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관계의 거리두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길고 긴 인생 친구들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나처럼 워킹맘의 고민을 할 테고 누군가는 전업주부의 고민을 할 테다. 결혼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또 나름대로의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서른에 서로의 다름을 끼얹은 채로 ‘옛날의 추억’ 실타래기 하나로 만남을 이끌어가는 건 꽤나 감정 소모가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까지 나의 감정은 영글지 못하였고, 다른 친구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해 주기엔 나 스스로의 힘듬과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아직 애어른이다.



요즘따라 나의 생활이 안정되어가면서 주변을 점점 정리하게 된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는 생각을 하면 무조건 ‘끊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끊어지지 않기 위해 나의 생활은 어찌 됐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느꼈다.


내가 안정되지 않았을 때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반면에 내가 너무나도 안정적일 때는 불안한 관계들을 거리두기 하는 것도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서로의 생활을 모르는 것도 때로는 편안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우울은 공감이 안될 때가 많으니까. 물론 그들도 그렇겠지만) 당분간은 동굴 속의 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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