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상을 차리며 생각난 것들
나와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 술자리를 즐기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술을 좋아한다.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점이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정말 힘들었겠다!
피곤한 저녁에 맥주 한 잔 생각이 나는가.
나는 그렇다.
사실 술이라는 존재는 그렇게까지 누구나에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긴 하지만, 술로 인해 일어나는 나쁜 일들도 많고 술을 싫어하고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부부는 이 취향이 맞아야 하는 것 같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술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단 사람과는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가끔 흑역사를 만든다. 결혼 전에는 그냥 모른 체했던 나의 추태들이 결혼 후에는 다르다. A와 술을 마시고 B에게는 안 그런 척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줄곧 술을 좋아하는 나를 싫어하곤, 혐오하곤 했다. 혼자 자취할 때 맥주 없는 저녁을 아쉬워하는 나 자신이 좀 바보 같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 테스트를 하면 분명 아닌데, 알코올 중독자인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게 나의 취향이 아니라 잘못된 습관이라고만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함께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책임을 가져야 한다. 다행히도 그 과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 다행이다.
요즘은 “내가 의식하는 선” 에서만 술을 먹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마시던 술은 줄이기로 했다. 정말 즐거울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절제할 수 있어야 즐거운 취향이다.
만약 내 남편이 나의 취향과, 나의 좌충우돌 성장과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다른 의미로 우울했을 것 같다.
사실 술을 같이 즐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빠져있는 대상에 상대방이 얼마나 이해해줄 수 있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뇌를 취하게 하는 술에 무슨 그리 깊은 뜻이 있겠냐만은. 나는 나의 술 취향을 이해하는 남편이라 너무 좋다. 이전에는 줄곧 “술꾼”이라는 이상한 이미지만 소구 되곤 했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그냥 난데, 술을 좀 유달리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이런 맥락일지 모르겠다. 내가 약간은 부끄러워했던,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모습을 공감받을 수 있는 사람. 약간 특이한 취향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100% 나와 맞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10% 를 메꿔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 마이너스를 메꿔준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남편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