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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Jul 14. 2022

강릉 일기 #7

오늘은 오죽헌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은 새벽부터 깨진 않았다. 7시 20분에 맞춰진 알람 소리가 들려왔지만 꼭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휴가의 맛 아니겠는가? 


느긋하게 일어나 마당에서 클로이와 잠시 시간을 보내고 세상 소식을 확인했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제주도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 카페를 열었다가 이틀 만에 임시 휴업한 뉴스가 화제였다. 손님이 너무 몰려 동네 골목마다 주차난이 일어났고, 폭염 속에서 대기 줄이 100미터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기다린 손님 중엔 재료가 소진되어 빈손으로 돌아 나와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카페 시스템 재정비와 철저한 예약제 운영을 약속하며 휴업 공지가 뜬 상태. 유명 연예인이 굳이 카페를 여는 것은 대기업 골목상권 침투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부터 연예인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가 있다는 의견까지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효리가 카페를 열면 붐빌 것이 뻔한데 굳이 왜 거길 가서 힘들게 줄을 서고 고생을 할까? 난 제주도의 이효리 카페보다 강릉의 카페 춘식이가 좋다.


오늘 점심은 오월에초당. 일단 이름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검색해 보니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된 바 있는 맛집이다. 초계국수와 오징어 파전을 주문했다. 초계국수는 20년도 더 전에 테헤란로 근처에서 먹어본 후 그 맛에 반했는데, 그동안 먹을 기회가 없던 메뉴다. 오징어 파전은 언제나 불패의 메뉴이거니와 다 먹지 못하면 포장해 가서 저녁에 먹어도 될 메뉴라서 마음 놓고 시켰다. 음식에 초연한 편인 내가 얼마만에 설렘을 안고 음식을 기다린다. 


속속 도착하는 손님들 중에 나처럼 주차장을 못 찾아서 헤맨 손님이 많은가 보다. 꽤나 큰 소리로 불평을 한다. 심지어 내비가 시키는 대로 갔는데, 바로 옆집인 툇마루 카페였고 그 사실도 모른 채 한참 줄을 섰다는 거다. 사장님이 그런 경우가 많다면서 안타까워 하니, 기세가 살아난 젊은 남자가 함께 온 여자에게 아직도 그 카페 앞에 줄 서 있는 사람 중에 오월에초당인 줄 아는 사람 많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나도 내비가 시키는 대로 이 식당을 찾아왔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서는 바람에 좁고 혼잡한 길을 한참 돌아서 식당 전용 주차장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젊은 남자에게 사실은 나도 헷갈렸어요, 하고 동조를 해주고 싶었지만 딸이 옆에 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도톰하게 구워낸 오징어 파전에 오징어 링들이 넉넉하게 박혀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오래전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줄지어 있었던 파전집들과 비슷한 맛이다. 어느새 1/3쯤 먹고 나니 초계국수가 나왔다. 차갑고 새콤한 음식을 먹고 나면 오징어 파전의 맛이 떨어질까 봐 절반만 남을 때까지 파전을 계속 먹었다. 남은 절반은 포장해서 가져가기로 하고 초계국수로 젓가락을 옮겼다. 일단 국물을 한 모금 맛을 보는데, 테헤란로 그 집에서 먹던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겨자가 들지 않아 오히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국수는 소면을 적당히 삶아서 넣었는데, 후루룩후루룩 잘 넘어간다. 닭가슴살도 퍽퍽하지 않고 국수에 섞여 입안으로 딸려 들어간다. 에어컨도 빵빵한 집에서 냉국수를 먹으니 방금 전까지 뜨끈한 파전을 먹었음에도 온몸에 냉기가 퍼진다. 국물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엊그제 유퀴즈에서 본 신장 전문의 말씀이 생각나서 최대한 자제하고 건더기 위주로만 먹었다. 무리를 하면 더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남은 파전을 포장해 들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점심은 오월에 초당. 시원한 초계국수와 바삭고소한 오징어파전은 성공적.


기왕 바닷가 근처까지 왔으니 오늘은 경포대에서 바다 멍을 하기로 했다. 경포 해변은 씨마크와 스카이베이라는 두 개의 고급 호텔이 양쪽 끝을 차지하고 그 사이에는 주로 횟집들과 새로 지은 부티크 호텔들로 채워져 있다. 해변가에 바로 주차가 가능하고, 호텔과 식당이 있기 때문에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아직 본격 휴가철이 아니라 피서객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한가롭게 바다와 바람과 햇살을 즐길 수 있다. 경포 해변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해수욕장을 따라서 소나무 숲이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소나무 그늘이 져서 어느 정도는 햇빛을 가려주는 데다가 솔잎들이 보드라운 모래를 덮고 있어 바닥에 앉아 쉬기에 좋다. 


평화로운 경포 해변. 두번째 사진에 저 멀리 노란 뗏목(?!)을 타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사진에는 어렴풋하지만 비명소리와 웃음소리는 사진 찍는 위치에서도 선명하였다.


경포대의 평화를 깨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네댓 명의 젊은이가 구명조끼에 헬멧까지 착용하고 노란 보트에 오른다. 말이 보트이지 알라딘의 매직카펫처럼 그저 평평한 형태라 배보다는 뗏목에 가깝다. 이 노란 뗏목을 스피드보트에 매달아 끌어주는 것이다. 아마도 이걸 플라이 보트라고 부르는 듯하다. 속도가 얼마나 날지는 모르지만 제법 스릴이 넘치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해상 액티비티는 일단 이용객이 있으면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저절로 호객이 된다.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나도 동행이 있다면 당장 한번 타보자고 졸랐을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비는 오지 않지만, 기온이 여름 치고는 견딜만하여 예정대로 오죽헌을 찾았다. 오만 원권에 그려진 신사임당, 오천 원권에 그려진 율곡 이이가 모두 태어난 곳이 오죽헌이다. 아시다시피 이이는 신사임당의 아들이다.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 탄생지'라는 다소 민망한 간판이 기다리는(실제로 이 간판 옆에 서 있는 이이와 사임당 동상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는 표정이다) 오죽헌은, 이번 강릉 여행에서 처음으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곳이다. 


오죽헌은 며칠 전 다녀온 허균-허난설헌 생가에 비해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오죽헌은 입구의 정원부터 광활하고, 오죽헌 숲길이라는 둘레길이 있으며, 사임당이 그림의 소재로 썼던 식물들을 심어놓은 작은 정원과 연꽃으로 채워진 연못까지 있다. 강릉 시내를 내려다보는 높은 위치에 율곡의 사당과 오죽헌(몽룡실), 그 내정에는 사임당 배롱나무와 율곡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두 나무는 모두 두 위인의 생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의심 많은 나에게는 정말?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오죽헌의 구석구석. 왼쪽 맨위가 오죽헌(몽룡실)이고, 둘째 줄은 사임당 배롱나무와 율곡 소나무, 제일 아랫줄은 오죽헌 숲길이다.


오죽헌은 까만 대나무 집이라는 뜻이다. 검고 가느다란 대나무(오죽)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민가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벽은 흰색이고, 기와는 검은데, 기둥과 석가래 등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소박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궁궐이나 사찰, 사당과는 달리 단청이 없고 기둥도 각진 기둥을 썼으며 처마 밑에는 새 날개 모양의 공포(익공)를 썼다. 오죽헌의 별명은 몽룡실인데, 이는 사임당이 용꿈을 꾼 후 그 방에서 율곡을 출산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집은 사임당의 친정인데, 서울에 있는 남편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게 하고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사임당은 결혼한 후에도 이곳에 머무른 기간이 길었다고 한다.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줄기가 검고 잎은 푸른 오죽. 오죽헌에서는 볼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다.

"글을 잘 썼어." 율곡과 사임당이 뭘로 유명한지 묻는 어린 자녀에게 어떤 아빠가 내놓은 답이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길래 오천 원권 오만 원권에 올라갈 인물로 선정되었을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만 원권 지폐에, 나라를 구했다는 이순신 장군은 고작 백 원 동전에 그려져 있는데, 정말 대단한 모자가 아닐 수 없다. 문송한 시대라지만, 글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며 인류의 삶을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안타깝게도 새로운 기술에 의해 밀려나곤 한다. 그러나, 좋은 글과 좋은 예술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기도 한다. 율곡은 일종의 작가, 철학자, 교육자, 정치인. 사임당은 화가이자 시인. 요즘 시대에 가장 기피되는 전공인데 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에게 여전히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오늘 만난 문화해설가 말씀에 따르면 율곡은 두 번째 아내에게 힘겹게 자녀를 얻었을 뿐 첫 번째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그 후대가 변변치 않았다고 한다. 율곡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낼 형편이 되지 않아 제자들과 지인들이 자금을 마련하여 진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는 아직까지 민족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당장의 취업이 급하기야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문송하다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은 오월에초당에서 오징어 파전을 먹고, 오천 원권에 이이와 오만 원권의 사임당이 태어났다는 오죽헌까지 들렀으니 그야말로 O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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