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장인 클로이
처음 입양했을 때 클로이는 생후 7개월의 귀염귀염한 강아지였다. 클로이의 첫 번째 보호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 귀요미를 유기견 보호소에 맡겼다.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 미용을 마친 클로이는 그 보호소에서 단연 돋보이는 미모였다. 유기된 강아지이니 무료로 데려온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중성화 수술 등 입양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과 보호소 후원을 위해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2009년 당시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600달러였다.
클로이는 나의 첫 번째 반려견이었기 때문에 키우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보호소에서 받은 교육용 DVD를 집중해서 봤지만, 매일매일 낯선 상황들이 생겼고 결국 구글 검색과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클로이를 키웠다. 아마도 심봉사가 젖동냥을 해가며 심청이를 키운 것이 내가 클로이를 키운 경험과 비슷했을 것이다.
강아지 나이 7개월이면 신체적 성장은 마무리 단계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숙하여 말하자면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해당된다. 클로이의 문제 행동은 소파, 침대, 이불에 오줌 싸기, 가죽 핸드백 잘근잘근 씹기, 해열제 한 병을 다 털어먹고 토하기, 식탁 위에 뛰어올라 베이컨 훔쳐 먹기, 다른 개가 방금 싼 따끈따끈한 응가 주워 먹기 등 다양했지만, 그중에 으뜸은 빈번한 가출이었다.
극강의 외향성을 가진 클로이는 언제나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은 더욱 사랑했다.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미국에서는 혼자 딸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사실상의 싱글맘이었던 나로서는 간신히 아침 저녁 한 번씩 동네 산책을 시켜주었는데, 그 정도로는 클로이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 고맙게도 이웃집의 줄리아가 자신의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한 번씩 클로이를 같이 데려가 주었지만, 클로이는 "I am still hungry!"를 외치는 히딩크 감독처럼 여전히 바깥세상을 갈망했다.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 오래된 단독주택을 렌트하여 살았는데, 뒷마당에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클로이는 밖에 나가고 싶고 나는 나갈 형편이 안 될 때 차선책으로 클로이를 뒷마당에 풀어놓았다. 울타리 안에서나마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즐기라는 뜻이었다. 마당에는 수시로 청설모와 새들이 찾아와 심심할 틈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뒷마당에 내놓은 클로이가 보이질 않았다. 숨을 만한 큰 나무나 구조물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더 찾아볼 것도 없이 클로이가 집을 나갔음을 확신했다. 대문이 닫혀있는데 어떻게 나갔는지는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일단은 개를 찾는 것이 시급했다.
서둘러 슬리퍼를 꿰어 신고 집에서 입던 편안한 복장 그대로 클로이를 찾으러 나섰다. 동네방네 나의 추리한 몰골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지만, 목청껏 클로이!!!를 외쳐대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렸다. 다행히 가까운 이웃집 앞마당 한켠에서 냄새를 맡고 있는 클로이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를 보면 반갑게 달려올 줄 알았던 녀석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계속해서 줄행랑을 쳤다. 내가 뛰어가면 이 녀석도 뛰고, 내가 잠깐 멈춰 헉헉거리면 이 녀석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클로이는 주둥이가 긴 강아지라 숨을 헐떡일 때는 입 모양이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표정이 나를 놀리는 듯했다. 아, 그 순간의 기분은... 배신감과 짜증, 수치심, 자괴감, 분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블렌더에 때려 넣고 윙~~~ 갈아버린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결국 클로이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이웃의 팸이라는 친구였다. 마침 외출하기 위해 집 앞에 세워둔 SUV에 타려고 팸이 차문을 열자, 클로이가 그걸 보고 달려가 냉큼 올라탄 것이다. 클로이는 늘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고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은 더더욱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 차나 냉큼 올라타고 떠나갈 녀석이었다. 일단 차에 올랐으니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 클로이는 곧바로 검거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가출한 사춘기 딸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집 엄마에게 내 험담을 잔뜩 한 후,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 클로이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볼 차례. 우선 클로이는 보기보다 아주 작은 체격을 가졌던 것이다. 풍성한 이중모 때문에 언뜻 보면 8킬로쯤 나갈 것 같지만 사실은 5킬로밖에 안 나간다. 목욕을 시키거나 미용을 해보면 그 몸이 얼마나 앙상한지 깜짝 놀라게 된다. 성인 남자의 주먹 하나가 빠져나갈 정도의 구멍이면 억지로 몸을 밀어넣어 통과할 수 있다. 다음으로, 클로이는 매우 튼튼한 앞다리를 가졌다. 대문이 잠겨 있다면 울타리 밑으로 땅을 파서 일명 개구멍을 만들 수도 있다. 알고 보니 뒷마당에 개구멍이 두 개나 있었다. 언뜻 보기엔 매우 작은 구멍이지만, 두툼한 털 덕분에 상처를 입지 않고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탈주 사건 이후 발견된 개구멍은 모두 보수를 했다. 하지만, 클로이가 집요하게 공략을 하면 개구멍은 쉽게 다시 뚫렸다. 렌트한 집이라 대대적으로 울타리 공사를 할 수도 없다 보니 클로이의 탈주는 수시로 일어났다. 그렇게 해서 클로이는 동네에서도 유명한 탈주견이 되었다. 이웃의 어떤 아주머니는 escape artist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탈출의 달인', '탈출 장인' 정도가 되겠다. 개를 안 키우는 집보다 키우는 집이 더 많은 동네인지라, 그런 클로이를 거슬려하는 이웃은 없었다. 한 번은 클로이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귀가한 적도 있다.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발견한 동네 경찰이 안전사고를 우려해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왔는데, 마침 클로이가 없어졌다고 집에서 뛰쳐나오던 나와 마주쳤다. 경찰은 클로이가 우리 개임을 확인하고, 경고 한 마디 없이 쿨하게 동네 순찰을 이어갔다.
한국에 자리를 잡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클로이가 다시 탈주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여름 무더위를 피해 밤 산책을 나갔다가 또 한 번의 탈주극이 벌어졌다. 어두워서 제대로 묶지 못했는지 목줄이 풀리며 클로이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일명 '쪼리'라고 하는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제대로 뛸 수도 없었다. 클로이는 주택가가 끝나고 과수원이 시작되는 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들개 (혹은 주인 없는 개) 서너 마리가 으르렁거렸다. 농담이 심한 사람들이 클로이에게 '한입거리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행히 그 개들 덕분에 클로이가 멈춰 섰고, 내 품에 저항 없이 안겨 무사히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 이후로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클로이가 탈주한 적이 없다.
강릉 집에는 사실상 울타리가 없다. 대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에만 울타리가 있지만 미관상 존재할 뿐 클로이의 통행을 막아주지 못한다. 당연히 클로이는 마당을 벗어나 달리고 싶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제는 열세 살의 노령견이라 얼마나 잘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당에 있던 클로이가 눈앞에 안 보일 때는 "클로이, 안돼!"라고 외치면 어디선가 눈을 내리깔고 죄지은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나타난다. 가장 멀리 간다 해도 우리 집 화단과 이어진 아랫집 화단이다. 더 이상 달아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나를 약 올리며 온 동네를 누비던 클로이의 젊음이 그립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