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J
자, 이제 더 이상 쓸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그 까닭은 만일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도 귀찮은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일에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앞서 인디언 부락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샐리 아줌마가 나를 양자로 삼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나는 그 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일이라면 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저, 민음사
내가 기억하는 J와 나의 첫 대화는 “나랑 화장실 같이 갈래?”하고 J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중학교 2학년 개학하고 첫 날이었고, 나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고개를 푹 숙인 채 읽고 있었다. J는 원래 친했던 친구인 아람이와 싸워서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같이 화장실 갈 친구가 필요했는데 마침 혼자 데미안을 읽고 있던 내가 눈에 띈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95년 당시 수원의 여중생들은 화장실을 꼭 함께 가는 문화가 있었다. 화장실을 혼자 가는 건 마치 점심을 혼자 먹는 것만큼이나 친구 없는 학생으로 보이기 좋은 행동이라 꺼렸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친구가 많지 않은 데다가 그다지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던 나는 종종 화장실을 혼자 가기도 했지만, 그런 나 역시도 늘 화장실을 혼자 갈 배짱은 없었으며, 먼저 같이 가자고 청해주는 친구를 거절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기에 J와 함께 화장실을 갔고, 그렇게 우리의 30년 우정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 J와 친구가 되었지만 내가 J를 안 건 그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했다.
나는 동수원 초등학교 시절부터 J를 알고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 올라온 전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도 없고 옷도 없고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할머니도 없고 있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뭐가 싹 다 없는 아이였다. 부산에서는 “소정이 니는 커서 뭐가 될라꼬 말을 그래 잘 하노? 변호사할끼가?”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만큼 말을 잘 했던 나는 수원에 와서 입을 열 때마다 친구들이 포복절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투리를 쓴다는 게 그렇게 웃긴 건지도 그때 처음 알았고, 솔직히 내가 그렇게 사투리를 많이 쓴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 나는 늘 나 잘난 맛에 살다가 웃음거리가 되자 입을 꾹 닫아버리고 친구 없이 외톨이로 지냈다.
당시 J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먼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빛나는 아이였다. 전교 부회장이었던 J는 공부도 잘 했고,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했으며, 무엇보다 마르고 하얗고 예뻤다. 나는 J의 친구가 아니었지만 전교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J를 모를 수 없었고 나 역시 J를 선망했다. 그랬던 J가 화장실 같이 가자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중학교 시절에는 어쩐 일인지 초등학교 때와는 좀 달라져있었다. 고다르의 ‘내 멋대로 해라’ 속 진 셰버그를 연상시키는 아주 짧은 숏커트에 파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교복 치마는 아주 길게 늘여서 내려 입은, 말하자면 ‘좀 노는 애’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날라리는 아니었고 멋을 부리는 애 정도였던 것 같다. 어쨌거나 J의 변신은 좀 파격적이었고 J는 뭐가 됐든 자신이 정한 규칙 안에서 늘 열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J와 아람이 사이에서 말을 전달해 주는 임무를 가지고 J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아람이와 J가 화해해서 더 이상 전달자 역할이 필요 없어졌을 때에도 여전히 J는 내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또 같이 연극반 오디션을 봤으며, 무려 10:1이라는 나름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연극반 단원이 되었다. 우리는 선배들의 기합과 선생님들의 천대를 이겨내며 연극을 했다.
J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경영학을 전공하고 컨설턴트가 되었다. 중학교 때 인문계 고등학교 가는 것도 사치라며 반대했던 부모님들이 미술 전공을 시켜줄 리 없었다. J는 컨설팅을 해서 번 돈으로 프랑스에 미술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그 때가 스물 일곱이었다. 나는 그 때 취직을 했고 빨리 취직했던 J는 돈을 모아 유학을 갔다. 그리고 십여 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 작가가 되어 원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J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친구로서 자랑스럽고 한 인간으로서 경이롭다. 그리고 그 멈추지 않는 변신과 모험은 ‘허클베리핀’을 연상시킨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인데 시작부터 이런 경고문이 실려있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이렇게 다소 과격한 경고문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재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족시킬 만큼 다양한 모험담으로 가득하다. 허클베리 핀은 교양도 예절도 다 집어던지고 그저 모험을 한다. 끝까지 그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고. J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