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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Oct 30. 2022

꿈을 믿고 꿈 속에서 사는 돈키호테

나의 문우 L


나리, 돌아가시지 마세요, 주인 나리. 제발 제 충고 좀 들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미친 짓은 아무도 죽이지 않는데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겁니다요. 다른 손이 목숨을 끊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우울 증세로 죽으시다니요. 이보세요, 게으름 피우지 마시구요, 그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세요. 그리고 우리가 약속한 대로 목동 옷을 입고 우리 들판으로 나갑시다요.

- <돈 끼호테2> 세르반떼스 저, 창비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을 끈질기게 믿기는 어렵다. 꿈 꾸는 걸 좋아하는 나 역시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꿈을 의심한다. 그럼 꿈을 포기하는 건 스스로 납득하기 어렵고 어딘지 부끄러우니까 새로운 꿈을 꾼다. 새 꿈을 꾸면 또 다시 가슴이 부풀고 뭔가 도전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고 밥 맛도 더 나고 괜히 들뜨게 된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 얼마나 오래 할 지도 모르면서 운동복부터 깔 별로 장만하는 그런 기분, 어쩌면 모두들 조금씩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원래의 꿈, 어쩌면 진짜 나의 꿈이었을 그 꿈은 새 꿈에 밀려 마음의 자리를 잃고 서서히 잊혀져 간다.


 요즘 자기 개발서 같은 책들을 보면 ‘꿈 꾸는 능력’이란 말을 많이 쓴다. ‘성공하려면 꿈 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꿈을 믿는 능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L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는 쉽게 꿈 꾸지는 않지만 한 번 꿈을 꾸면 그 꿈을 무서울 정도로 끝까지 믿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비단 십 년을 넘게 문단의 문을 두드려 등단한 그의 히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나는 그의 몸에 베어있는 꿈꾸는 사람의 자세를 보았기 때문이다.


L은 아주 소소한 것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상상하고 그걸 구체화시켜나간다. 그는 먹고싶은 게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웨이팅을 해서 먹는다. 줄 서기가 은근히 귀찮아서 돌아서고 싶을 법도 하지만 그는 줄 서있는 걸 즐긴다. 쓰고 있는 글은 그 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루 한 줄이라도 꼭 쓴다. 한 줄을 썼다면 그 작품을 잊은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 꼭 챙긴다. 나중에 살고싶은 집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그는 주방 타일 색상이라든지 디자인 품번까지 정해 놓는 타입이다. 이런 그는 자신의 꿈 속에서 사는 돈키호테를 닮았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1605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돈키호테가 여행을 떠나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당대에 이미 아류작들이 속출할 만큼 히트했다. 돈키호테는 자신을 방랑기사라 믿으며 돌시네아 공주를 사랑하고 비루한 현실을 기사의 모험으로 믿으며 싸워나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바보같고 우스꽝스럽지만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어떤 꿈을 꿔본 사람에게는 그 모습이 우습지만은 않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소중히 키워가는 것,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에 무작정 믿고 자신의 인생을 거는 돈키호테의 모습에 찡해지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 중


우리에게 돈키호테의 명언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이 가사처럼 꿈 꾸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L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진짜 상상력은 날마다 놀랍고 새로운 걸 떠올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떠올린 환영이 눈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거라는 걸. L과 나의 인연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나는 앞으로 그를 오래 보게 될 것 같다. 그를 보고 있으면 내 꿈도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며 끈질기게 키워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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