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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Oct 30. 2022

이게 다예요

4월 13일.
일생동안 나는 썼지.
얼간이처럼, 나는 그 짓을 했어.
그렇게 되는 것도 또한 나쁘지 않아.
나는 결코 거드름부리지 않았지.
일생 동안 쓰는 것, 그게 쓰는 것을 가르치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면해지지는 않아. 

- <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동네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명작 속 캐릭터와 함께 떠올려보며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 하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그들 안에 있는 명작을 찾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문득 '그럼 나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건 생각보다 난해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라 어떤 특성이나 이미지로 나를 압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닮은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되고싶은 글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게 다예요(C'est tout)' 속 4월 13일의 일기가 바로 그것이다. 죽음에 임박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독백과 일기, 편지, 고백 등 자유롭게 오가며 남긴 뒤라스의 언어는 혼돈스럽고, 그래서 더 눈부시다. 내가 죽을 때, 나도 뒤라스처럼 쓰고 싶다. 일생동안 나는 썼다고. 마치 얼간이처럼... 그리고 햇빛 속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어린아이들과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마지막 길을 걷고 싶다. 


1994년 12월 25일 파리.
어린아이들의 비가 내렸지 햇빛 속에서.
행복감으로.
나는 그걸 보러 갔지.
그러고 나서 그 아이들에게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했지. 수백년 전부터.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들은 아직 신들의 지력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숲속을 계속 걸어야 했지. 그리고 어른들과,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노래해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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