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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Oct 30. 2022

허튼 말은 하지 않는 코딜리어

내 친구 윤복이


선하신 아버마마, 아바마마는 저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저도 이 빚을 고스란히 되갚아 드리며, 아바마마를 순종하고 사랑하고 더없이 존경합니다. 아바마마만을 온전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언니들은 왜 결혼을 했죠? 만약 제가 결혼한다면 저의 서약을 받아들이는 그분이 제 사랑과 관심과 의무의 절반을 가져가게 될 터. 아바마마만을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해 저는 정녕 언니들처럼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 열린책들



아직 21세기가 오기 전, 20세기의 끝을 향해가던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작가라고 점잖게 앉아서 글을 쓰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학교에서 이름난 광대였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선뜻 짐작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연극부의 대표 배우이자 부장이기도 했던 나는 버튼만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주크박스처럼 “정소정 노래시켜요!”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면 앞으로 나가 노래를 하곤 했다. 내가 특별히 노래를 잘 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당시 우리반 친구들은 수업이 듣기 싫으면 시키면 다 하는 광대인 나를 이용했던 것 같다. 나는 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당시에는 공부도 하지 않고 늘 파란 학교 체육복 상하의 세트를 입고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자다가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으로 달려가 연극 연습을 했다.


그런 시절에 내가 엔터테이너로서 했던 일들 중에 연극 외에 기억나는 일 하나는 바로 ‘선거운동’이다. 수원영신여고의 학생회장 후보 중 한 명의 당선을 위해 나는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춤췄다. 그 친구는 바로 윤복이인데-윤복이는 물론 별명이다. 윤복이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윤복이라는 별명이 귀엽고 정감있어서 우리는 윤복이를 늘 윤복이로 불렀다.-윤복이를 위해서라면 수십 개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지지공연(?)을 하는 것쯤은 힘들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가요를 개사해서 요란한 공연을 했었는데, 그 공연이 먹혔던 건지, 아니면 윤복이가 회장감이어서인지 어쨌거나 윤복이는 전교회장이 되었다.


윤복이는 작은 개척교회 목사님의 딸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 쉽게 말할 수 없는 거니까, 나는 그저 이 글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윤복이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친한 친구라서 윤복이를 지지했다기보다는-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윤복이만큼 믿을 만한 친구가 없다고 자부해서 지지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윤복이는 허튼 말은 하지 않는 친구다. 쉽게 말할 수 없는 힘든 사연이나 고민을 누군가 딱 한 명에게 털어놓아야 한다면 아마도 윤복이에게 털어놓을 것 같다. 윤복이라면 진실하고 현명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다. 경솔하게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울어도 주고 기도도 해주리란 믿음이 있다.


목사님의 딸이었던 윤복이는 지금 목사님의 아내가 되었다. 윤복이는 지금 대학로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면서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윤복이는 과연 윤복이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이 세상 사람 중에 누군가 딱 한 명만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면 아마도 윤복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려깊으면서도 가식 없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윤복이를 생각하면 셰익피어의 그 이름도 유명한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의 셋째 딸 코딜리어가 생각난다.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는다. 언니들은 자신들의 진심과는 상관 없이 당장 재산을 많이 얻기 위해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아 리어왕을 기쁘게 한다. 반면 그 모든 상황에 염증을 느낀 코딜리어는 바른 말로 리어왕의 노여움을 산다. 코딜리어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 하지만 결국 언니들의 손에 쫓겨난 아버지를 끝까지 보살피고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셰익스피어가 쓴 이 희곡에서 코딜이어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전설에서는 리어왕이 다시 왕위를 되찾고 코딜리어를 후계자로 임명한다고 한다.


진실하게 말하고 끝까지 자신의 말에 책임지려 하는 코딜리어를 닮은 윤복이는 이 전설처럼 비극이 아닌 승리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달덩이같은 환한 미소를 가진 윤복이의 삶이 어두울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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