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술

뻔한 술 이야기 - 12

by 시그리드

술꾼들이 '주류'인 세상

술을 마시는 가장 큰 목적은 취하기 위해서이다. 취하는 행위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거나, 좀 더 솔직해지고 싶을 때, 지금이 즐겁더라도 더 흥이 나고 싶을 때 등 목적이 있다. 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이 취하는 기분이 즐거워야 하고 즐겁지 않더라도 다른 효용-위안, 수면, 담대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것들은 남의 일이고, 술 마시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운 일이라면 술을 마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애초부터 술과 맞지 않는 성향인 것이다.


술 좋아하는 '주류' 들 덕분에 언제나 활기찬 주류 시장은 2019년 전 세계 기준 19% 성장했고, 코로나 이후로 외부 술자리가 줄은 나머지 위축되었으나 혼술족 등 집에서 즐기는 인구의 증가로 다른 활로를 찾았다. 지금과 같이 술자리가 보편화되어있고, 나와 같은 술꾼들이 목소리 큰 세상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소위 '알쓰'(이하 알코올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놀림받고 자조하기까지 한다. 술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수자가 되는 셈이다.


미래의 술

"과거엔 나도 술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지. 그렇고 말고"라는 개 뼉따구 같은 술부심을 부렸던 적이 있다. 사실상 섣불리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한 것이다. 모든 게 마음이 맞고 좋은 사람인데, 술을 싫어한다고 하면 속으로 크게 실망하며, 약간 선을 긋기도 했다. 술의 즐거움을 모르다니 참 안됐어... 라며 술을 마시면 기분이 다운된다는 친구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다. 세상에! '이 좋은 것을 왜?' 라며 설득하려고 시도도 하고. 이 정도면 소주 명예 소방관 내지는 두꺼비네 회사에 크게 지분이 있는 줄 알았을 거다.

다행히 술을 먹지 않지만 내 징징거림을 산뜻하게 무시하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친해지는 데에 꼭 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없는 것이고, 먹을 수 있다고 한들 취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내가 좋다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나 체코, 독일 같은 국가에 비하면 약과지만 1년 동안 한국 성인 1명이 먹는 주류의 양은 8.5L라고 한다(2018년 기준). 술의 역사는 우연히 만들어진 포도주로부터 비롯되어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계 각지에서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술이 탄생했다.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쿠치카미자케 같이 곡물을 씹은 후 뱉어서 만드는 술도 있었고, <해리포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무알콜인 '버터 맥주'도 있었다.


앞으로 디지털 세계가 보편화되면, 인간은 술을 찾게 될까?

어쩌면 메타버스가 삶 자체가 되면, 나를 대신해 나의 아바타를 위한 술 NFT를 사서 들이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술은 아니더라도 술과 유사한 기분을 내게 만드는 약물이나 가상의 자극 같은 것들이 술을 대체할지도. 그때라면 실제로 술을 즐기거나, 즐기지 않거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 않을까? 불필요한 술자리나 각자 다른 알코올 소화력 때문에 벌어지는 불평등한 상황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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