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웃긴 존재
얼마 전 P언니와 술을 마시면서, 재미난 표현을 듣게 되었다. 술이라는 게 사람을 (좋은 의미로) 웃기게 만들기 때문에, 술은 '웃긴 존재'라는 것이다. 애초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존재라고 지칭한 것도 신선했거니와, 술과 술을 마시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P언니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은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였는데 그가 바라보는 술친구들의 모습은 귀엽다고 했다. 사람들은 술을 먹으면 귀여워진다고. 전 직장에서 반복되는 비상식적인 술자리들 때문에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었던 사람임에도 여전히 알코올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수 있다니 역시 그답다 싶었다.
나 같은 경우는 삐뚤어진 게 있어서, 같이 술을 먹는 모든 이들의 취한 모습을 귀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평소보다 무척 귀여워지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또 술이 들어가는 순간 대체 어디에 감춰두었을지 모를 코미디언 자아를 꺼내는 사람들도 아주 귀엽다. 내가 애정하고 아끼는 사람(그리고 그의 술버릇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술이 취하면 높은 확률로 귀엽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술자리나, 그럴 상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귀가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귀여움의 필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냥 더 많이 마셔서, 만인의 구분이 중요해지지 않은 시점이 가면 된다... 결국 술은 관대함을 시전 하는 강력한 물약이긴 하지만, 통하는 것은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뜻이다.
귀여움과 술
물론, 적당한 술은 웃음에 관대해지게 만드므로, 대체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만들 확률이 높다. 그 방향을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틀면 그 감정은 응원으로 바뀐다. 자신에 대한 칭찬과 토닥거림에 인색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자 위안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마음이 힘든 나 자신을 토닥이며 귀여워해 주기 위해 술을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술이 주는 관대함에 너무 빠져서는 안 되지만, 가끔 인류애를 끌어올리고 싶을 때 적당히 마시는 건 괜찮지 않을까? 술 마셔야 할 핑곗거리는 또 늘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