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다버그에서 브리즈번으로 내려가는 버스는 새벽 세시 반에 있었다.
콜택시가 내려놓고 간 터미널의 공기는 음산하고 차가웠다. 바깥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는 쓸쓸했다. 낯선 남자가 어둠처럼 거기 웅크리고 있다가 내 쪽으로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삼십대로 보이는 마른 남자였다. 자기 누이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말리는 빨래처럼 털어내고 있는 남자가 그때 나는 부러웠다. 내 속에 웅크린 것이 남자의 이야기로 인해 조금조금 허물어지는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자는 속엣 말을
타자의 이야기처럼 했다.
나는 남자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엄밀히 표현하면 남자에 대한 무섬증과 연민과 공감이 뒤섞여 있었다. 남자는 자신 속의 어둠과 축축함을 내가 마치 볕인 듯 말리다가 내가 버스에 타고 운전기사가 핸들을 꺾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 홈리스의 선하고 맑은 눈동자 속 갈망과 갈증 섞인 빛, 그건 사람이 그리운 눈빛이었다.
케언즈에서 출발하여 번다버그에서 나를 태우고 다시 출발한 버스는, 여섯 시간마다 운전기사를 교체해가며 시드니까지 운행하는 호주의 광역버스였다. 소읍의 동넷길을 굽이돌아 아홉 시가 되니 푸드코트가 있는 장소에서 30분의 프리타임을 허용했다. 커피 한 잔과 컵케잌을 혼자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노랑 곱슬머리의 청바지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젊었고,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리고 물었다. 가방 속에 먹을 것이 있냐고. 무미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써 ‘헝그리’였다. 나는 미안했지만 마시던 커피와 컵케잌을 내밀었다. 주머니의 6불도 털어주었다. 남자는 무연하게 받아서 청바지 주머니에 무심하게 넣었다.
이 나라 문화는 홈리스를 만났을 때, 무조건 도외시하지 않고 잔돈이 있으면 나누어 준다고 한다. 행여 제2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암묵적 약속이란다.
두 남자들을 통해 나는 실감했다.
가족이 떠나면 속 감정에 목마르고, 돈이 떠나면 한 끼 밥에 목이 타는 것을.
누군가의 드러나는 비극은 그 누군가의 드러나지 않은 비극에 비해 불공평하다. 그래서 누군가의 비극은 주머니 속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대는 손끝에 머문다. 그때 타자의 관심과 사랑이 함께 머문다면 누군가의 비극이 꽃이 되는데 한결 더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만지작대던 손가락으로 주먹을 꽉 쥐어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길 때, 보이든 보이지 아니하든 비극은 우월해진다.
예를 들어 박경리 선생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문학에 골몰했다니, 만일 선생이 행복했더라면 대장정의 『토지』라는 걸작이 탄생하지 않았을 모순이, 인생 속엔 있다. 선생의 모진 비극은 펜 끝으로 집중하게 만들었다니. 그래서 누군가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어 휘청거리며 무너지려는 세상을 일으켜세운다.
그러고 보면 주체적인 삶은 공평하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 나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내 운명의 깃을 결대로 짜나가는 자는 지금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더라도, 미래가 밝을 수 있는 거다.
그날 만난 두 남자에게는 지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급박함이나 절박함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고요한 삶의 잔잔한 감응이 전해왔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갈 이유도,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도 깊이 체감하지 않은.
삶은 계층의 위치가 아니라, 마음의 위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자기답게 자기 마음을 믿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깊은 비통의 늪에서 끙끙 앓던 나를 그들은 한 발자국, 이전 보다 밝은 곳으로 옮겨 주었다.
그날 우연처럼 필연처럼 내 삶을 스치고 간, 미지의 두 남자. 그들도 분명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단 한번이라도, 도움을 주던 사람들이다. 때론 자신도 모르게 해악자였거나, 때론 도덕군자이기도 했을 ... 따스한 집이 있던 보통의 사람이었을 테다.
어느덧 버스가 로마 스테이션에다 나를 내려놓고 시동을 걸고 있다. 저만치서 아까 노랑머리 남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눈이 마주치어 내가 손을 아주 잠깐 올렸다 내렸다. 그도 잠깐 손을 올린다. 잠시나마 홈리스와 홈이스 사이에서 콘크리트 벽이 허물어진 듯, 묵은 빚을 갚은 느낌이다.
한 십 년 전인가. 서울역에서 한 남성이 다가와 돈을 좀 달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를 투명인간이듯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그 일이 내 안의 묵은 거미줄처럼 진득하게 걸려있었던.
그날 그들을 그리 만난 건 나의 행운이었다. 속 빚을 갚았으니. 덩달아 내 아들의 죽음 앞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깜깜한 밤을 하루살이 같이 흐느끼던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숨통이 트였으니.
선하고 담담하던 그 두 눈빛,
그리고 나. 신생新生에 들길 바라며
빈 가슴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