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어도 흔들리지 마

by 예나네
그 겨울이 그악하게 추울 땐, 벽에 걸린
그 달의 달력을 떼어내십시오. 봄날이 시나브로 드는 날, 다시 걸면 되니까요.


시드니올림픽 공원에서 스트라스필드로 가는 샛길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호주의 나무는 보통 상록수인데, 이 거리의 가로수는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잎을 떨어낸 나무는 불투명의 회색 먼지 빛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나무를 매만져도 나무는 무반응이었습니다. 무생명인 듯 갑각류인 듯 껍질이 무감각했습니다.

가랑잎 하나가 고공의 낭떠러지에서 나무의 마른 눈물인 듯, 삶의 한계점인 듯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불자 가랑가랑거리는 가랑잎은 가지 끝에 매달린 생生을 부여잡고 뭉크의 “절규”로 온몸을 파르르르 떨고있었습니다.


나는 딸아이를 스트라스필드의 약국 앞에 내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그 가랑잎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아까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던 잎을 햇살의 따스한 손이 매만지고 있었고, 바람은 잠잠해졌습니다.

가랑잎들이 겨울나비처럼 허공을 날아 내리는 이 샛길이 좋아졌습니다. 일주일쯤 후에도 그 잎이 삶 쪽에 붙어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며칠 사이에 주름살로 오그라든 할머니의 비손처럼 메말라 있었지만, 아직은 생명체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자 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원으로 내려앉은 영원의 순간. 가랑잎이 땅으로 돌아간 이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속에는 내 아들의 영원도 들어있습니다. 어미인 나무가 어쩔 수 없고 어미인 내가 어쩌지 못하는 절대자의 때時.

영원에 든 아들, 민구의 하이스쿨때 만든 작품



나무 밑에도 나의 발밑에도
낙엽이 쌓여 있습니다.


나무와 동물과 사람의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바스라지는 가랑잎 소리는 희생의 소리입니다. 푸른 싹이 내재된 자유의 음성이며, 생명을 다시 피우려는 소생의 몸짓입니다.


밟히면서 썩어 문드러지는 시간, 아니 짓이겨지면서 말갛게 발효되어가는 시간은 잎들이 다시 엽록소를 내장한 나무가 될 준비를 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나무의 유전자를 지닌 가랑잎이 무기물이 되고, 다시 나무로 되돌아간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무의 순환구조입니다.

가지 끝에 매달려 최전방의 절벽 같은 생生의 최후를 최선으로 마무리해냈고, 땅으로 내려앉은 시간까지도 바스락대며 바스라지는 감내로써, 다시 나무의 몸으로 체화되어가는 가랑잎의 시간, 그것은 잎이 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이며 긴밀하고 기밀한 기도의 기간입니다.


그럼에도, 가랑잎과 나무 사이의 떨켜층이 낸 그 별리別離는, 시리고 쓰리고 아프고 고프고 슬픈 상실감의 상처에서 온전히 헤어날 순 없습니다. 다만 그 상실감은 아름다운 향기로 승화되어 다시 어여쁜 잎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며, 썩어 곰팡내 나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가슴 시린 어느 달의 달력을 떼어 놓으셨는지요?

나는 9월이 아프고 고프고 슬퍼서 떼어냈습니다.

가랑잎처럼 바닥으로 내려앉은 내 9월의 달력은 희생과 자유와 희망을 가라앉히는가 하면, 재조합하여 새 생명으로 푸르러 갈 준비 중에 있습니다.


새움 돋을 새봄이면, 무채색 먼지처럼 딱딱하게 알몸이던 나무에서, 말간 윤기 어릴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따스한 봄이 도래한 그 이듬해부터 9월의 달력을 다시 달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디 얼음 날처럼 시린 나의 9월 같은 달력으로 가슴을 치지 마시고, 발아래로 잠잠히 내려놓으십시오. 9월의 달력을 떼어내는 순간, 당신의 겨울이 점점 따스하게 느껴질 겁니다. 짐승같이 극악하게 쓰린 가슴을 꽉 깨문 겨울의 침묵, 이 깊은 속내엔 “희생” “자유” “소생”이란 단어가 화로火爐속 조약돌처럼 따끈따끈 묻혀 있다가 그대를 가지런히 맞이할 겁니다.

대시여, 마음이 그악스럽게 추울 땐 벽에서 달력을 떼어 보세요. 가랑잎처럼 바닥으로 내려놓아 보십시오. 시리고 쓰린 겨울바람이 제아무리 그대의 자아를 흔들고 흔들어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저 아프고 고프고 슬픈 그 달의 달력을 가슴에서 고요히 내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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