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단하다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영국 대영도서관을 둘러보고, 에펠탑 꼭대기 라운지까지 섭렵했으니 이만하면 수준 높은 아티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프라하도 가고, 빈도 가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도 관람하고.
아트 관련 책은 또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가. 그뿐인가. 수년 전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평화 문학포럼에 비록 관람자로 관중석에 앉아 있었지만, 세계적인 대문호란 문호는 거의 다 직접 봐왔다. 다른 모든 걸 접고 사흘 동안 내리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갔던 그때, 가슴 부풀었던 그 감정은 아직도 내 몸에 생생히 살아있다.
장 보드리야르와 그의 아내, 오에 겐자브로, 오르한 파묵, 르 클레지오... 오정희, 성석제, 김영하... 를 보았고, 그리고 마치 나 자신이... 뭐라도 된 것 같던, 착각 속에 갇혀있었던 시간들.
그렇다고, 그 장소와
작품에 대하여 프레젠테이션 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명민한 당신이라도, 뒤로 한 발 물러 설 게다. 꽃게처럼 스르르 미끄러지며 모래 속으로 쏘옥 들어가 빠꼼이 너를 숨기고 안 나올 거다. 아무것도 못 봤고 못 읽었다고 스르르 꼬리를 내려야 할 게다.
사람들 앞에 서서 단 한 마디라도 말을 하려면 그것도 영어로, 그것도 영어 잘하는 사람 앞에서. 그러기 위해선 다시 단어를 하나하나 꼼꼼히 꿰맞춰보고, 주어 동사 들어갈 자리도 밀도 있게 언어의 판을 다시 짜야할 터, 그래 맞다. 영어회화는 그냥 관람하거나 읽거나 귀로 들어온 감성적인 아트가 아니라, 현실이다.
프레젠테이션!
초승달 뜬 어느 초저녁. 밤에도 우리 지붕 위 안테나는 세상을 향해 촉을 세우고 있다.
영어로 말하는 이 나라에 살면서 자식 세 명을 하이스쿨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시켰고, (부자로 오해 마시길.) 12년 동안 영어로 물건을 샀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들의 로컬 교회를 동분서주하며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하교할 아이들을 기다리는 차 안에서도 영어단어를 외웠다. Atmosphere. 12년 전 하이스쿨 2학년이던 둘째 딸은 이 단어를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 지 엄마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그때는 /엣 머스피어/ 분위기라는 이 단어가 왜 그리도 발음이 어렵고 안 외워졌었는지. 난해했던 이 단어를 달래듯, 나무라듯, 매달리듯 외웠던 기억이 난다.
Calm Atmosphere 차분한 분위기
Cozy Atmosphere 아늑한 분위기
Peaceful Atmosphere 편안한 분위기
Family friendly Atmosphere 가족친화적인
분위기 있는 매력적인 이 단어를 내 혓바닥의 자장으로 끌어들여, 내 딴엔 자연스럽게 언어를 돌돌 말아 굴려내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제아무리 홀로 연습을 해 두어도 내 가련한 영어는 영어를 잘하는 그들, 외국인들 앞에만 서면 꽃게가 되곤 했다.
물 빠진 바다의 모래사장 꽃게 구멍 같은, 내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간 영어는 도무지 입술 바깥으로 안 나왔다. 그들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온통 하얘졌다. 여기 산 지 10년이 다 되었을 때도, 카페에 가 라테 한 잔 주문하려 해도 가슴이 오돌돌 떨리곤 했다.
돌이켜보니 이유가 있었다.
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영어권 나라에 산다고, 귀동냥으로 영어가 느는 걸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건, 입 벌리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무모한 짓이었다.
마음이 그 환경에 젖어있으면 가슴이 무언가로 차오르듯 풍요해지는 감성적인 아트와는 성격이 달랐다.
영어회화는 명백한 현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결실이 없었다. 단어를 암기하고, 누군가와 영어로 말하고, 주어 동사가 배치된 정확한 영어문장을 읽고, 그들의 발음을 반복해서 듣고, 받아 써야 했다. 한 마디로 행동파여야 했다.
거의 10년을 브리즈번과 시드니에 살면서 나는 한국사람들만 만나왔고, 한국교회만 다녔다. 물론 집에서도 아이들과 한국말만 해 왔다. 그러면서 영어가 안 늘거나, 어렵기만 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간 내가 한 일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든, 학생비자든, 가디언 비자든, 영어권 나라에 와서 영어를 배우려거든, 무조건 그 나라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게 맞았다.
일단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문화를 가로질러 그 낯선 세계로 들어가자. 몸소 부딪혀서 체험하고, 체감한 후에 한국사람들을 만나도 안 늦다.
처음부터 한국사람부터 만나며 한국사람들 속에서 젖어 살다 보면, 영어는 당신의 언어에서 영원히 세이 굳 바이 할 수도 있다. 영어권에서 머문 당신의 시간이 축적된다고 해서, 어느 날 입 밖으로 영어가 술술 나올 일은 1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영어를 어영부영 해오던 나는, 2016년도에 한국인이 별로 없던 이곳 번다버그에 와서, 호주교회 Baptist church에 나갔다. 어느 교회나 처음 가면 적어내는 "새 친구 등록부"를 주는데, 나는 거기 비고란에 이렇게 적어냈다.
나는 한국 작가입니다. 한 달 전에 시드니에서 번다버그로 이사를 했어요. 나는 호주 친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진 못해요. 혹시 가능하거든 제게 친구를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I am a Korean author. A month ago I moved to Bundaberg from Sydney. I need a Australian friend. But i don't speak English very well. It would be great If you can introduce a friend for me.
월요일 날 바로 담임목사 엔드류로부터 연락이 왔고, 매주 금요일마다 짐과 마리라는 호주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호주에 10여 년 동안 살아왔으면서도 호주 문화를 긴밀히 접하지 못하였는데, 이들을 가까이 만나면서 좀 더 깊이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호주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닷가 모래밭 제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꽃게처럼, 내 목구멍 속에 오금 오금 오금 저리듯 쑥 들어갔던 영어가 꼬불꼬불 꼬부랑 말을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처럼 떼어놓기 시작한 거다.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한 외손주, 재영이와 영어로 대화를 하려면 열심히 실력을 다져놓아야 겠다!
행여 호주에 영어를 배우러 오려거든, 영어를 레알 real로 만드는 방법은 많다. 호주 사람 집을 셰어 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들과 관계 맺으며 친해지는 길이 있다.
낯선 이국에서의 낯선 길, 낯선 시간들.
낯선 돌다리처럼 두드려가며 꼬부랑 말을 찾다 보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낯선 오솔길에 핀 작은 들꽃은, 나에게로 와서 의미로운 하나의 꽃으로 포옹 안겨올 것이다.
이거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다.
English is not art but reality.
목수 아저씨가 시간의 지붕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집이 완성 되듯이, 내 꼬부랑 말의 집에도 하나하나 건축의 각을 맞추고 언어의 못을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