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st be their good friend
숨이 속으로 흐흡 말려들었다.
후 불면 삐 소리를 내고는 바로 말려들던 장난감 피리가 생각났다. 잠깐이나마 내 몸을 숨기고 싶었을까. 여기가 아니야, 하고 싶었다. 한참을 가만히 숨 죽인 채 있었다. 내 지인이 이런 곳에 산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낯설었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여기 살러 온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속에서 두려운 감정이 잠시 일었다.
평소 이런 집 앞을 지나치면서, 도대체 이런 어수선한 집에 누가 살까, 하던 다소 부정적인 생각이 들던 그런 집이었다. 게으르거나 음습한 생각이 들게 하던 집 앞이었다.
평지의 집 터는 드넓었다.
하프 에이커는 돼 보였다. 500평 정도.
헌 차들이 대여섯 대가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두어 달은 깎지 않았을 잡초가, 무성할 정도는 아니지만, 늘 보아오던 여느 가지런한 집들과는 다르게 꽤 자라 있었다. 잔디가 아니라 잡초였다.
한쪽 옆에는 유클립투스 숲이었고, 다른 한쪽은 크지 않은 이웃의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말하자면 호주의 교외였다. 농촌도 아니고 타운도 아니었다.
그녀 집 지붕 위 하늘은,
꾹 짜면 푸른 물이 나올 정도로 맑았다.
그녀 집 앞 차 안에서 숨을 죽인 채 앉아있던 그 3분은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속시간 10시여서 정신을 차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가 니네 집 맞니, 하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전화음이 발신되자마자 새하얀 윗도리를 입은 그녀가 저만치 창 속에서 손짓을 했다.
달포 전에 영어반에서 만나 내 친구가 된 그녀는 모로코 여인이고, 그녀 남편은 파키스탄 사람이다.
그녀가 올려준 주소를 치고 GPS를 따라 운전을 하여 우리 집에서 18분을 달려왔다. 번다버그 동쪽 끄트머리에서 남쪽 끄트머리까지의 거의 직선코스 거리였다.
신발을 신고 들어간 집안에서는 락스 냄새가 났다.
가져간 꽃을 꽂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락스 냄새에 머리가 덴 듯이 아파왔다. 참을 수 없어서 내가 물었다.
너 혹시 오늘 대청소했어?
화이트 킹(호주 락스) 냄새가 난다?
작년 12월 25일 날 호주에 처음 온 89년생 그녀는
부엌에다 커다란 락스 통을, 퐁퐁처럼 갖다 놓고 뚜껑을 열어둔 채 사용하고 있었다. 그걸 조금씩 물에 타서 그녀 고운 맨손에 묻혀서 접시를 닦아왔단다. 내가 이건 접시를 닦는 세제가 아니라고 말하자, 얼른 뚜껑을 닫고 바깥으로 치운다.
나는 대책 없이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물 설고 낯 설은 이역만리에 남자 하나 보고 온 이 여자. 내 둘째 딸의 나이와 동일한 이 여자. 내가 좋다고 나를 따르는 이 아이가, 두어 달을 카사블랑카에 사는 지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또 울며 밤낮을 지샜다는. 사슴 같은 순한 이 아이.
잠시만 있어도 내 목이 칼칼하도록 아파왔는데, 그녀와 그녀 신랑은 이 락스 냄새를 일상인 듯 맡으면서 그렇게, 달콤했을 그들의 신혼의 시간을 보내고 살아온 거였다.
나의 제의로 우리는 식탁 의자를 들고 베란다로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설픈 뜰 안에도, 베란다에도 새하얀 햇살이 공정하고 균일하게 가득 내려와 있었다.
그 햇빛으로 인해 내 발가락이 따끈따끈 전해져 오는 느낌이 좋아졌다. 난 바람과 햇살이 섞인 그늘 바깥으로 내 벗은 온 발을 쑥 들이 밀어서, 그 착한 볕을 쬐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 신랑 즈베르가 내 차를 수리하는 동안, 내 친구 파티마는 점심을 가지런히 차려내고 있었다. 치킨 소스를 뿌려 오븐에서 갓 구워낸 포테이토와 치킨 요리에, 향 곱고 맛깔난 사과를 잘게 썰어 오목한 접시에 소복 담아 한 사람 앞에다 놓아주고, 바나나와 아보카도를 유유에 갈아 시원한 과일주스를 컵에 따르고, 식빵을 바삭하게 토스트 한 따끈따끈 그녀의 손맛이 다 일품이었다.
어느덧 벽에 걸린 시계는 바람처럼 3시까지 가 있었다. 다행히도, 열어 둔 문 사이로
락스 냄새는 스르르 꼬리를 감추었다.
그녀 남편은 비행기를 만드는 일급 테크니션이다.
회사에 소속되어 비행기 부품 중 전기 파트를 담당한다. 그리고 투 잡으로 주말에 집에서 이렇게, 자동차를 수리해준다. 손재주가 많고 똑똑한 서른 세살의 성실한 젊은이다. 며칠 전에는, 아기를 가졌다는 자기 색시 앞에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란다.
뚝뚝 눈물을 떨구더란다.
어느 날 파티마와 쇼핑센터에 같이 갔다가, 주차장 기둥에 박아 앞 범퍼가 우그러진 내 차를, 즈베르가 감쪽같이 고쳐놓았다. 그 외 부분적으로 흠집 나있던 내 헌 차를 새 차처럼 커버해 주었다.
준비해 간 돈 봉투를 내밀자, 즈베르는 한사코 사양을 해서 내가 졌다. 파티마가 나한테 받은 게 있는데, 자기가 이 돈을 받으면 불공평하단다.
11년 전에 이 나라에 왔다는 그의 영어는 네이티브에 버금가는 실력이었다.
나보고 무조건 많이 말하고, 많이 소리 내어 읽으라고 했다. 미국 영화보다 호주 뉴스나 호주 라이프 쪽을 시청하라고 했다. 같은 영어라지만, 두 나라는 엑센트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서울 말씨와 경상도 말씨가 서로 다르듯이?
열살 되었다는 고양이가 빤히, 돈 가지고 싸우는 우리를 쳐다보다가, 모른 체하고 딴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냥, 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렴.
Just be their good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