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보다 나이를 먹어도 다섯 살이나 더 먹었고, 가방끈이 길어도 4년이나 더 길어. 까불지 마, 알았지?"
지인의 남편은 자기 가방끈 길이를 갖고 자주 놀려댔다고 한다. 웃고 넘기지만 그 웃음 끝은 파란 멍울 같은 저항이 생기더란다. 너가 책가방 끈 늘어뜨리고 캠퍼스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난 은행에서 돈 세고 있었거든, 하고.
이방인들이 스무 명 남짓 모여든 여기 영어교실에서, 가방끈 하고 영어 끈은 전혀 무관하다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증명해야 했다.
명색이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가방끈을 매고 다녔고, 거기다 12년을 호주에 살았으면서도, 난 이 교실에서 영어 토킹이 하위 수준이다. 입술 위에서 영어단어가 자꾸만 꾸물꾸물거리고 버벅버벅거리는 면에서는 상위 수준이다.
반면 로즈는 필리핀에서 국민학교만 나왔다는 40대 여인이다. 영어라고는 이 나라 호주에 와서 처음 해 본 그녀의 목소리가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나는 잘 모른다. 짜랑짜랑하고 거침없는 음색을 키 158 정도 되는 몸집에서 또랑또랑하게 잘도 뱉어 놓는다.
까만 머리카락을 무릎까지 차랑차랑 내려오도록 기른 그녀. 선생 맷이 자신의 베프인 양 온갖 색깔의 꼬부랑 말을 라면 부서뜨려 놓듯 교실의 허공에다 꼬불꼬불 늘어놓는 거 보면, 난 그저 웃음이 번진다. 구엽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하다.
맷, 너 그거 알아? 우리 반 몇몇 학생들 너무 무례해. 너 아침마다 우리에게 커피 내려서 나눠 줄 때, 스틱 슈거 사다 놓으라느니, 설탕 필요 없다느니, 커피를 좀 더 진하게 내려오라느니... 하잖아!
Matt, do you know? Some of our class mates are too rude. When you prepare coffee for us every morning, they tell you to get a stick sugar or not to put sugar in their coffee. Sometimes they complain that their coffee is not strong enough.
어제 내가 그 이야기를 내 남편한테 했더니, 남편도 그러더라.
Yesterday my husband and I talked about that and he agreed with me.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꼬불꼬불 꼬부랑 말로 따발총을 쏘아대는 그녀, 전날 배운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컴플레인하는 방법을 까묵은 듯하다.ㅎ
Excuse me, do you have a moment?
이뿐 아니라 그녀는 온갖 일상을 맷 선생한테 일러바치듯 고하는 바, 우리 반 학생들은 그녀의 자잘한 가정사를 알알이 다 꿰고 있다.
그때마다 맷은 씨익 웃어넘기니 그저 교실은 다시 또 훈훈해지면서 맛깔스럽게 하루를 시작한다. 가방끈 긴 나도 그렇게 그녀처럼 일러바치고 싶지만, 말할 수준이 안되니 입술을 꼭 닫고만 있다.
로즈의 잔소리는 그저 로즈메리 향 같은 양념이다. 또 내가 비록 가방끈이 그녀보다 길지라도, 영어를 그녀보다 훨~ 못한다는 걸 톡 쏘는 듯 각성시키는 핫 칠리 소스가 된다. 그래도 writing 수준은 내가 그녀보다 좀 낫다는 소릴 듣는다. ^^*
음식에도 온갖 양념이 필요하고, 사람도 이 사람 저 사람 모여서 온갖 사람들의 사람다운 사람의 향을 낸다.
무슨 공부든, 공부를 하는 일은 아기처럼 되는 일이다.